수학과 관련하여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너무나 오래 전 일이고 문자로 기록되기 훨씬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뭐라고 단정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수학의 기본이 되는 숫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몇 만 년 전의 동굴 벽화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및 구석기 유물들의 대칭적인 표현을 보면 대칭이라는 관념을 먼저 만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가족 단위의 숫자나 사냥 여부를 결정해야 할 포식동물의 숫자와 사냥꾼의 숫자를 비교하며 수를 인식하는 일도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어쨌거나 아주 먼 옛날에 문자가 나타나기 전부터 사람들은 숫자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 둘 셋이라는 추상적 언어로 숫자를 부르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나 동물을 돌멩이나 나뭇가지에 대응시키는 대응 관계로 수를 세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숫자에 머무를 때는 구태여 진법이 필요 없지만, 숫자가 커지다보면 규칙적으로 숫자를 나타내는 것이 표현하거나 계산하는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진법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가령 1부터 100을 센다고 하더라도, 100 개의 숫자가 아무런 규칙성 없이 개성 있게 표현된다면, 100 개의 숫자의 표현방법을 다 외워야 한다. 그 전에 100 개의 수에 대응되는 기호를 협의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도 엄청날 것이며, 대개는 그러한 협의에 이르기도 힘들어서 소통을 위한 공용 언어의 범주에 자리잡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100보다 숫자가 커지면 솟자는 표준화된 기호로 정착되지도 못할 것이며, 계산도 아주 어렵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야 실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수학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든 구태여 그렇게 무모한 일을 벌여봤자 별 도움이 안 되는 방식은 물론 채택되지 않았으며, 숫자가 커갈수록 진법에 의하여 표기함으로써 적은 수의 기호로 큰 숫자를 표현할 수 있고, 계산하기도 쉽도록 수학은 인간의 영역에 자리 잡았다.
현대인에게 표준이 되고 익숙한 진법은 물론 10진법이며, 아마도 우리의 손가락 개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훨씬 전 옛날에 손이 땅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수와 대응시킬 수 있는 가장 가깝고 유용한 도구인 손을 기준으로 하는 10진법이 먼저 역사에 등장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록을 살펴보면 최초의 진법은 60진법이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옛 일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최초의 문명과 최초의 문자의 흔적에서 찾은 숫자 체계는 60진법이다. 60은 1, 2, 3, 4, 5, 6, 10, 12, 15와 같은 여러 수를 약수로 갖기 때문에, 채집한 과일이나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서로 나눠야 할 때 편리했을 것이다. 지금의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남쪽 지역에서 일어난 인류 최초로 문명인 수메르 문명의 기록에 따르면, 약 5천 5백 년 전(기원전 3,500년)에는 문자와 숫자 그리고 60진법이 나타난다. 60분이 1시간이 되고 1분은 60초으로 시간을 세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까지, 최초의 문명과 문자의 흔적이 끊어지지 않고 전해졌다.
그런데 60이라는 숫자는 일상에서 작은 숫자라고 하기에는 다소 크며, 너무 큰 숫자를 단위로 진법을 세는 것은 일상에서 낭비가 될 수 있다. 또한 시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는 하루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사람들 사이의 거래와 소통이 잦아지는 사회의 일상에서는 더 작은 시간 단위가 필요하다, 11.2 킬로미터 정도인 바빌로니아 마일은 거리의 단위가 되기도 했고, 시간의 단위이기도 했다고 한다. 1 바빌로니아 마일을 걷는 2시간을 단위로 하루를 나누어 12 바빌로니아 마일은 24시간의 하루를 이루며, 12진법은 숫자를 셈하는 단위보다는 시간에서 사용되었다. 12 역시 1, 2, 3, 4, 6과 같이 약수가 많고 60보다 작은 숫자이므로 일상에서 12진법을 사용하는 것은 편리했을 것이다. 12진법은 시계에서만이 아니라 연필 12자루를 1타스로 하고, 12인치가 1피트에 해당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아직 남아 있다. 이러한 편리성은 다른 문명으로 전파되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이유가 됐고, 대부분의 현대인은 비록 두 시간에 11.2 킬로미터를 걷지는 못하지만 12진법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