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로써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물이나 공기일 것 같다. 그러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고 물은 늘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기 때문에, 물이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많은 물질도 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면서 자주 물을 마셔야할 정도로 생명체의 삶에 중요하다. 이산화탄소 분자와 물 분자가 빛 에너지를 받아서 포도당이라는 영양소를 만들고 산소를 내어놓는 것이나 포도당을 분해하여 생체의 에너지 화폐에 해당하는 ATP를 만들 때 물 분자가 필요한 것처럼 물이 생체의 여러 화학반응에 분자로 참여하는 것 외에도, 대부분의 물질은 혈액이라는 수용액에 녹아서 온몸의 세포 곳곳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받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등 물은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온갖 수송의 매개체로써도 중요하다.
물은 하나의 생명체 혹은 생명체 집단에서 중요한 것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지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 몸의 70% 정도가 물인 것처럼, 지표면의 70%는 바다로 덮여있으면서 해류를 통하여 물은 지구적인 순환을 하며 증발하고 다시 비를 내리며 지구 곳곳을 적시고 얼리며 지구 표면을 변화시키고 기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은 생명의 혈액이면서 지구적 순환을 통하여 지구라는 행성이 지구로써의 특성을 띠게 만드는 것이다. 물의 어떤 특성이 이러한 역할을 가능하게 했을까? 하필이면 물이 왜 그런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물은 지구에 언제부터 이렇게 풍부했던 것일까? 공기와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평상시에는 소중한 것을 모르는 물이지만, 정작 물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갑작스레 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 시간을 내어 물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그리고 물을 약간이나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에서 신선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이 토막글에서는 세상에서 물이 풍부한 이유, 그래서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된 기원에 대한 면면만 살짝 살펴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은 알다시피 분자식으로는 H2O 이며, 분자식이 말하는 대로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구성된 단순한 분자다. 지구에 물이 언제 나타났는지를 말하기 전에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기원부터 짧게 알아보자. 우주가 생기고 약 1초 정도 지났을 때 쿼크들이 결합하면서 수소 원자핵(양성자)이 나타났고, 이것은 기본 입자로만 이루어졌던 우주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복합물질 중 하나였다. 수소 원자핵은 약 38만 년 정도 지나며 전자와 결합하여 수소 원자를 만들며(원자가 탄생한 것은 우주에서 일어난 세 번째 결합이다) 빛을 해방시켰고, 그때 해방되었던 빛은 우주에 배경처럼 퍼져있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온 방향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H로 표기되는 수소(Hydrogen)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이며, 두 번째 흔한 물질은 He로 표기되는 헬륨(Helium) 원자다(헬륨의 대부분은 우주에서 일어난 두 번째 결합의 산물로써, 빅뱅 후 약 3분에서 20분 사이에 수소 원자핵들이 결합하며 핵융합으로 생성되었다. 물론 별의 내부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융합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이다). 그리고 우주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은하를 기준으로 볼 때, 세 번째로 풍부한 원소는 바로 O로 표기되는 산소(Oxygen)다. 헬륨은 18족 원소로써 다른 원소들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수소와 산소는 서로 결합하고자 하는(혹은 결합한 상태가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써 안정되므로) 속성이 있기 때문에, 우주적으로 볼 때 물 분자 H2O가 극단적인 환경이 아닌 다음에야 도처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산소는 수소나 헬륨과 달리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원소로써 그 기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반응성이 높은 산소 원자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주가 더 동적으로 진화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여러 원소들은 대부분 반응성이 높은 산소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하며, 우주와 달리 지구에서는 희박한 수소조차 산소와 결합한 덕택에 상당히 많은 양이 바다와 구름과 빙하와 호수를 형성하는 물 분자를 구성함으로써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태양계가 형성될 46억 년 전, 태양이나 다른 행성 및 혜성 등의 천체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원시 지구는 무척 뜨거웠고 바다를 갖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지구가 식어갔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각을 식혔지만, 약 40억 년 전에 태양계 외곽의 얼음이 풍부한 운석들이 지구에 1억 년 이상 쏟아져 들어오면서 바다를 형성할 정도로 물이 풍부한 지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비교적 가벼운 원소인 산소와 가장 가벼운 원소 2개가 더해진 물 분자는 대부분의 분자보다 가볍기 때문에 지각 위에 자리 잡아 지구의 표면을 흐르고 때로는 증발하여 허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지구를 순환한다. 어디서나 생명이 있는 녹색의 지구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물은 생명체만이 아니라 지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지역에 따라 나타나는 물 부족 현상과 사막화 혹은 폭우나 강력한 태풍과 같이 물과 관련된 자연재해는 지구적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잦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다음 글로 넘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