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시각은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감각이다. 따라서 인간의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영역은 후두엽(뒤통수엽)쪽에 상당히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감각의 인지를 통합하고 운동을 제어하는 소뇌와 붙어있고 시상은 척수와 연결되는 간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각은 빛이 각막과 수정체를 거쳐서 망막에서 전기적 신호로 전환되면서 뇌에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망막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상이 맺히고 빛의 양을 조절하는 물리적 과정이라고 한다면, 망막의 빛 수용체 수포는 뇌가 전달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전기적 신호로 변환된다. 빛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빛 수용체 세포는 약한 빛도 감지하지만 색을 분간하지 않는 간상 세포와 밝은 빛에서 색을 구별할 수 있는 원추 세포로 구성된다. 원추 세포에는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에 각각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 종류의 시각 세포가 있으며, 어느 종류의 원추 세포에 이상이 있으면 색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여러 증상(완전 색맹, 적록 색맹 등)이 나타난다.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보는 세상의 화려한 색깔들은 과연 진실일까?
자연의 기본 물리량을 정한 국제단위계(SI 단위계)는 질량과 시간, 길이, 전류, 온도, 개수, 광도의 7 가지가 있고 색에 대한 단위는 없다. 빛의 세기를 나타내는 광도는 있지만 색을 분류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각각의 색에 대응하는 빛의 파장으로 색을 대변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색깔과 빛의 파장은 우주 보편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없다. 모든 물체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빛을 내고 있는데, 시각 세포가 감각할 수 있는 영역의 빛을 ‘볼 수 있는 빛’이라는 의미의 가시광선(可視光線 visible light)이라고 부른다. 가시광선 영역에 해당되는 빛의 파장은 약 380 nm(나노미터라고 읽으며, 1 나노미터는 10-9 미터이다)의 보라색 빛에서 780 nm의 붉은 빛이다. 이 좁은 영역은 표면온도가 약 5,800 K(케이라고 읽으며, 절대온도를 나타낸다. 섭씨온도에 약 273을 더하면 절대온도가 되며, 온도가 클 때는 절대온도와 섭씨온도를 구별할 의미는 적어진다)인 태양에서 가장 세기가 높은(그러니까 가장 많이 나오는) 영역이다. 가장 높은 세기의 빛에 가장 민감하도록 인간의 시각은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물체는 온도에 따라서 가장 높은 세기가 나오는 빛의 영역이 짧아지는데, 보통 온도가 높을수록 가장 높은 세기가 나오는 빛의 영역은 파장이 더 짧고 에너지가 큰 빛이다. 만약에 태양보다 높은 온도의 별 주위를 공전하는 어느 행성에 생명체가 산다면, 그 생명체의 가시광선 영역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자외선 영역을 감각하는 대신에 붉은색 영역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외계 생명체가 느낄 색깔이 인간보다 덜 화려하다거나 더 화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구에서도 동물의 종류에 따라서 빛에 대한 감각들은 다르다. 해양 동물은 대개 한 종류의 원추 세포를 갖고 있으며, 영장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육상 포유류는 두 종류의 원추 세포를 갖기 때문에 인간보다 생생한 색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인간과 같은 거대 영장류와 캥거루와 같은 유대류는 세 종류의 원추 세포를 갖는 반면에 파충류, 양서류, 조류, 곤충은 네 종류의 원추 세포를 갖기 때문에 인간보다 100배 정도 더 색을 분류하여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눈으로 본 세상도 이렇게나 찬란한데, 100배나 더 미세하게 감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감이 안 온다. 그러나 드물지만 네 종류의 원추 세포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정밀한 테스트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그러나 인간을 뛰어넘은 색에 대한 감각을 대개의 인간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활용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나비의 어떤 종이나 조류에서도 비둘기와 같은 종들은 무려 다섯 종류의 원추 세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시각 기관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듯 지구에서도 생물의 종에 따라서 빛에 대한 색의 감각은 다르다. 멋진 미술품이나 풍경 혹은 쓸쓸함을 자아내는 창백한 푸른색에 대한 감각은 단지 경험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감정 이전에 생물학적 감각기관에 따라서도 일차적으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색을 도대체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명화를 볼 때나 멋진 장면에서 마음을 흔드는 느낌, 그리고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시각정보인 색이 상대적이라는 인식이 인간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은 인간을 위한 것일 뿐인가? 자극과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감흥과 감성 속에서 인간이라는 생물종을 넘어서 보편적인 예술과 보편적인 감정 그리고 보편적인 인식은 얼마나 가능한 것일까? 너무 과대하게 우리 스스로 도취하지 않고, 생명과 자연과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함으로 해서 인간은 보다 더 큰 우주적 존재로 발돋움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