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미니멀리즘은 사실 본질적이며, 그것은 고전역학만이 아니라 현대역학까지 아우르며 자연의 원리로 적용된다. 작용(action)이 최소가 되는 방식으로 모든 변화가 지배된다는 ‘최소 작용의 원리(least action principle)’은 짧으면서도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기 때문에(최소한 필자의 범위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단순한 사례를 들어서 살펴보겠다. 거리(distance)를 어떻게 정의해야 혼동되지 않고 명쾌하게 할 것인가? 두 점 사이의 거리도 있고, 점과 직선 사이의 거리 그리고 직선과 직선 사이의 거리와 같이 모양을 가진 것들 사이의 거리도 있다. 잠시 생각해보시라. 물론 생각하기보다 이미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먼저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겠다.
먼저 두 점 사이의 거리는 두 점을 잇는 최소의 경로로 정할 수 있다. 평면에서는 두 점을 직선으로 이으면, 두 점을 잇는 선분이 거리에 해당된다. 이 선분이 두 점을 지나는 다른 방식보다도 최소인 것은 그러면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그리고 평면이 아닌 구에서는 어떻게 잇는 것이 최소의 경로이며, 일반적으로 평면이나 구가 아닌 휘어진 곳에서는 어떻게 최소의 경로를 찾아서 거리를 정할 수 있는가? 이렇게 자꾸 복잡도를 증가시켜서 물어보면 짜증날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모든 상황에 대하여 다 답하는 것은 이 책의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지만, 어차피 책을 따라서 생각의 여행과 여행하면서 작은 지식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으니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가 보자.
평면에서 선분이 두 점 사이의 최소 경로인 거리가 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수식으로 증명할 수도 있고, 이것은 우리 경험과도 상통한다. 구면에서는 두 점을 지나는 대원(구면에서는 원을 얼마든지 작게 그릴 수 있지만, 가장 크게 그릴 수 있는 경우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구의 반지름 r을 유지하며 구면 위를 계속 움직이다 보면 2πr의 거리만큼 움직였을 때, 제자리로 돌아오며 가장 큰 원이 그려진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지 상관없다)을 따라서 그려지는 원호가 최소의 경로인 거리가 된다. 보다 복잡하게 굽어진 곡면 혹은 공간에서 거리를 정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며, 일반화하게 되면 일상적 언어와 일상적 관념을 넘어서 추상적 언어와 수학적 표기로 하는 것이 명쾌할 수(다가서기 어렵지만 점점 더 명쾌해지는…)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수학에서는 거리를 두 점을 변수로 갖는 거리 함수로 정의하며, 거리함수는 속성 세 개로 정의하여 명쾌하게 한다. 첫 번째 속성은 “자신의 거리(두 점이 같은 점인 경우)는 0 이다”라는 당연한 명제이고 두 번째 속성 역시 당연한데, “두 점의 위치를 바꾸어도 거리는 동일하다”는 명제다. 그리고 세 번째 속성은 거리로서의 속성을 반영한 것인데, “두 점 사이의 거리 함수의 값이 다른 경로를 거쳐서 오는 거리 함수의 값보다 크지 않다“는 명제(삼각 부등식 triangle inequality)다. 이렇게 거리 함수를 정의하면, 거리 함수는 거리함수가 정의되는 공간에 대하여 적지 않은 정보를 주며, 거리 함수를 정의될 수 있는 공간과 정의할 수 없는 공간으로 분류할 수 있기도 하다.
점과 직선 사이의 거리 역시 거리 함수가 최소화되도록 하면 된다. 점가 직선까지의 거리 함수 값이 가장 최소가 되는 직선 상의 점과 점 사이를 거리로 정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모양을 가진 도형들 사이에도 거리 함수가 최소가 되는 방식으로 두 도형 사이의 거리를 정할 수 있게 된다. 앞서서 경험이나 상식으로 평면에 있는 두 점 사이의 거리나 구면 위에서 두 점 사이의 거리 역시, 당연히 거리 함수의 세 속성을 모두 만족한다. 다소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다양한 공간에서 정의되는 거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도 연결된다. 3차원 공간과 1차원 공간이 분리된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관찰자가 보기에, 힘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물체의 운동은 사실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시공간으로 통합된 4차원 공간에서 가장 최소의 거리를 따라서 갈 뿐이다. 동역학이 기하학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