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버킷 리스트와 다르게 과학자의 버킷 리스트를 꼽아 보라고 한다 하더라도, 물론 과학자 개인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용량이 부족한 가속기로 실험하는 과학자에게는 더 뛰어난 성능의 가속기를 맘껏 사용하는 것일 수 있고, 현존하는 최고의 가속기를 사용하는 과학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미래의 가속기가 생전에 가동되는 것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과학자에게는 평생 해결하고자 하는 자신의 가설이 제대로 정당화되거나 다른 이론과 융합하며 발전되는 것을 보는 것을 버킷 리스트로 여길 수 있고, 누구는 학문적 성과 이상의 현실적 대가와 명예를 누려보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학자 개인의 버킷 리스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과학자라는 집단은 일반인과 달리 어떤 버킷 리스트를 갖고 있을까를 조금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며, 과학자 집단 역시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다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과학자가 과학을 통하여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개척하며 인간 생물종의 영역을 넓혀온 것처럼, 미지의 영역과 인식의 영역 사이의 경계에 있는 과학자들이 어떤 버킷 리스트를 갖고 있을까를 집작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공식적으로 과학자 사회에 설문조사하여 얻은 결과를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의 내용은 다분히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와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씀 드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과학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되는데, 인간의 과학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이고 만물의 변화를 자아내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도달할 정도로 발달하였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왜 만물의 근원에 대한 정체를 밝혀낸 것 이상으로 왜 이러한 기본입자들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어쩌면 철학적 사유와 닮은 영역까지도 진출해 있다. 또한 만물의 변화를 주는 네 개의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에서 전자기력(전자기 상호작용), 약력(약한 상호작용)을 통합하여 더 근원적인 관점(전기약상호작용)에서 상당부분 이해하고 있으며, 강력(강한 상호작용)까지 세 개의 기본 힘을 통합하여 자연을 꽤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까지 인간이 자연의 근본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성공적인 이론적 모델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과 일반 상대성이론으로써, 표준모형은 전자기력과 약력 그리고 강력을 통합하여 꽤 성공적인 이론이며 일반 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사고를 확장시키고 블랙홀과 같이 기묘한 천체를 예측하고 발견해내었다.
그러나 표준모형과 일반 상대성이론은 아직 잘 와합하고 있지 못하며, 가장 근본적인 네 개의 힘이 모두 통합되어 더 단순하고 근본적인 하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기술하려는 양자중력(quantum gravity) 이론은 현대과학의 버킷 리스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생각된다. 양자중력은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의 이론’(ToE Theory of Everything)이라고도 생각될 정도로 자연을 가장 근본적인 관점에서 기술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론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하니 퍽이나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자연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일관되게 기술할 수 있다는, 환원론적인 의미에서 바램 즉 버킷 리스트를 담은 용어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양자중력 이론을 제대로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리적인 수준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며 더 깊은 수준에서 무엇이 더 인간에게 숙제로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일단 거기까지 가면 더 무거운 숙제를 과학자가 기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근원적인 영역을 아는 것과 근원적인 것들이 모이고 엉켜서 더 복잡한 물체와 현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매끄럽게 이해하거나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가 복잡해지면서 어떻게 이전에 없던 현상들이 창발 되는지,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여 이렇게 작동되는지, 생명에서 정신이 어떻게 창발 되는지, 뇌의 신경세포들 집합인 커넥텀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되는지 등을 알아가는 것은 또 다른 영역에서 과학자의 버킷 리스트로 생각된다. 현재 과학자들의 버킷 리스트는 후대의 과학자들에 의하여 어느 정도 다다르겠지만, 어떤 버킬 리스트들은 인간의 정신과 문명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달을 가져다 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과학은 비합리적인 인간사회 시스템을 상당부분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로 작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과학이 인간의 가치 관념과 도덕, 사회의 정의와 비전에 근거 있는 지표로 발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버킷 리스트지만 살아서 볼 가능성은 희박할 것처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