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세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하며 합리적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의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누가 연구하여 그러한 결과를 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연구 결과에 대한 실증적 검증을 통과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연구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연구 결과는 다르게 취급받는 일들은, 인간사회의 어느 영역과 다르지 않게 종종 있었다. 물론 이미 학계에서 어느 정도 이상 검증된 과학자의 주장과 그렇지 않은 과학자의 주장 그리고 일반인의 주장을 다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검증할 기회를 박탈하거나 무시 당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은 모순으로 생각된다. 특히 뛰어난 여성 과학자, 이미 학계의 검증을 거친 여성 과학자에게까지 연구 결과를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과학의 역사나 과학의 용어에서 무시된다거나 현실의 삶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왔다. 최소한 객관과 합리를 중시해야 하는 과학에서는 성적인 편견과 부당한 대우를 추방하려는 과학자 사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고, 예전에 비하여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적지 않게 남아 있다고 느끼는 현대의 여성 과학자들 또한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부끄러운 일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여성의 고등 교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중요하고 창조적인 수학적 천재”라는 찬사를 받은 여성 수학자는 누구일까?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에미 뇌터(Emmy Noether 1882~1935)의 아버지 역시 유명한 대학교 수학 교수였으나 어린 시절에는 특별히 수학적 재능을 보이지 않았고 음악과 춤에 관심이 많았다. 여성의 대학 입학이 허용되지 않아서 수학을 청강하여 듣다가 나중에 제도가 바뀌면서 입학할 수 있었고, 박사 학위를 받고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대학교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서 무보수에 아무런 직함도 없이 7년 동안 일했다. 1915년에 힐버트와 클라인으로부터 같이 연구하자고 초청받을 정도로 이미 당대의 뛰어난 수학자였지만, “전쟁터에서 대학으로 돌아온 군인이 여성의 발밑에서 배워야 하는가?”와 같은 성적 편견이 팽배했다. 격분한 힐버트가 “여기는 대학이지, 공중목욕탕이 아니다.”고 말하고 클라인과 함께 노력했지만, 결국 임용되지 못하고 무보수로 연구소에서 일하였다. 1919년에 교수직에 임명될 수 있었으나,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인종차별법에 의하여 강의할 수가 없었고 1933년에 독일을 탈출하여 1935년에 종양수술로 사망하였다. 뇌터는 추상 대수학에 서 뛰어난 업적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상대성 이론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풀지 못한 힐버트와 클라인의 요청을 받아 해결했고 현대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정리 중의 하나인 ‘뇌터의 정리’(대칭성과 보존에 대한 유명하고 중요한 정리이다. 시간 대칭에 따른 에너지 보존, 공간 대칭에 따른 운동량 보존, 추상적 대칭성에 의한 전하와 쿼크의 색전하 보존 등을 수학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를 발표했다.
귀에 익은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퀴리 부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남편의 이름이 피에르 퀴리이기 때문이다. 번역에 있어서도 이러한 성차별적 성향이 있다)는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두 번이나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학자였지만, 아예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라듐을 공동으로 발견한 남편의 이름만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올려 있었으나 스웨덴 수학자 괴스타 미타그레플러의 반발 덕분에 이름을 받을 수 있었다.
역사적인 사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가령 독일의 천문학자 마리아 빙켈만(Maria Winkelmann, 1670-1720)은 공식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어서 30년 연상의 천문학자와 결혼하며 조수로 일하다 혜성을 발견했으나 남편의 이름으로 발표되어 이름이 묻혔고 천문학자들의 냉대로 천문학을 떠나게 됐다. 핵물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약한 상호작용에서 반전성이 보존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실험으로 보인 우젠슝(Chien-Shiung Wu 1912~1997)도 충분히 자격이 되었다고 여겨졌으나 노벨상을 받지 못하였다. 최초로 이론 물리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아 괴퍼트메이어(Maria Goeppert Mayer 1906~1972)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평생 무보수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노벨상을 받은 후에야 대학교수가 될 수 있는 등 합리적이지 않은 차별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여성은 여러 분야에서 성적 차별을 받고 있으며, 사회적 편견을 감내하는 일들이 많다. 사회 발달의 척도로 여겨야 할 정도로 각 영역에서 이러한 불합리함을 쫓아내야 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와 후손을 위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