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성과 뇌

뇌는 신경세포가 가장 발달한 기관이며, 지렁이와 같은 환형동물에서도 나타난다. 진화의 계통수를 따라가다 보면 플라나리아와 같은 편형동물과 해파리나 히드라 같은 자포동물(강장동물)에서는 뇌의 전단계인 신경절(신경세포들이 모인 영역)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생 중 어느 시기에는 뇌를 갖고 있다가 어느 시기에는 뇌를 갖지 않는 동물도 있다. 멍게(우렁쉥이)는 움직이면서 먹을 것과 정착할 곳을 찾아다니는 올챙이 모양의 유충 시기에는 뇌를 갖고 있지만, 바위에 고착한 이후로는 성체가 되면 뇌를 소화하여 없앤다. 성체는 흘러 들어오는 먹이만 잡아 먹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이 뇌는 이동과 연관성이 있다. 이동하면서 먹을 것에 대한 판단이나 위협으로부터의 회피 혹은 정착할 곳을 찾아서 뿌리를 내리는 등의 판단을 할 필요가 있을 때 뇌가 필요하다. 정착한 후에도 뇌가 있으면 먹이를 포착하는데 더 똑똑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할 것 같지만, 뇌는 유지하고 있기에는 워낙 많은 에너지가 드는 비싼 기관이기 때문에 고착한 성체에게는 비효율적인 기관이 되어 스스로 없애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성인의 뇌는 몸무게의 2%(약 1.5 kg)지만, 에너지의 20%를 소모할 정도로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기관이다. 이렇게 운영비가 많이 드는 뇌가 발달한 이유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며, 다른 동물보다 더 신체에 대하여 뇌의 비중이 높은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할 바 없을 문명을 발달시키며 뇌의 가치를 증빙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게 정신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유전자의 개수가 많다거나 단지 뇌의 신경세포가 많아서는 아니다. 학명도 귀여운 ‘예쁜꼬마선충(C. elegans)’는 302개의 신경세포를 갖지만 형질을 발현할 수 있는 코딩 유전자의 수는 인간과 비슷하게 2만 개가 조금 넘는다. 또한 코끼리도 유전자의 개수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지만 뇌는 4 kg 정도로 인간보다 훨씬 무겁고 신경세포 수도 많다. 다른 신체 기관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여 차별성을 찾기는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인간은 어떤 것이 다르길래 차별화된 세상을 만들어갈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뇌에서 신체의 여러 부분을 제어하고 감각하며 운동하게 하는 영역에서는 그렇게 차이가 없지만, 판단과 사고가 주로 일어나는 대뇌 피질 영역이 다른 동물들에 비하여 많이 발달 된 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대뇌피질에 있는 신경세포 수는 약 2백억 개 정도로 코끼리에 비하여 두 배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 수는 약 860억 개 정도로 추산되는데, 물론 신경세포들은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 본질적 가치이므로 신경세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신경세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에 다라서 뇌의 지도가 달라지고 뇌의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변하게 된다. 신경세포가 연결되는 부위를 시냅스라고 하는데, 인간의 경우에 뇌의 신경세포 하나는 수천 개의 신경세포와 시냅스를 통하여 연결성을 갖는다. 860억 개의 신경세포가 수천 개씩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인간은 약 150조 개 정도의 시냅스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인간과 비슷한 코딩 유전자 수를 지닌 예쁜꼬마선충이 302개의 신경세포와 7,500 개 정도의 시냅스를 갖는 것과 비교할 때 아주 큰 차이를 갖는다. 인간의 차별성은 다름 아닌 뇌의 지도, 즉 뇌 신경세포들과 시냅스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나오는 것 같다. 정신적 활동 및 정신에 대한 이해와 연결하려는 뇌의 신경 지도를 연구하는 것은, 그 복잡성에 있어서 게놈 프로젝트를 훨씬 넘어선다. 개체의 유전자(gene) 전체를 게놈(genome)이라고 하는 것처럼 신경세포의 연결성(connection) 전체를 커넥톰(connectome)이라고 하는데, 현재까지 커넥톰이 다 분석된 생물은 예쁜꼬마선충이 유일하며 인간의 커넥톰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뇌와 마음을 연결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의 최종 꿈은 아마도 커넥톰의 정복이 아닐까 싶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는 형식으로 대응시키면서 자아와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하여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White matter tracts within a human brain, as visualized by MRI trac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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