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문제가 문제다!

대학수학능력평가(이하 수능이라고 한다)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으로 크다. 수능의 출제경향과 수준에 맞추어 학생들이 공부할 수밖에 없고, 교사는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교육내용과 방향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수능의 과학탐구 영역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과연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필자가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다른 과학영역보다 수능의 물리 I 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먼저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물리 I의 교육목표를 수능이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아래는 “2015 개정 과학과 교육과정 해설서”의 내용 일부이다.

과학적 사고력은 과학적 주장과 증거의 관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고이다. 과학적 세계관 및 자연관, 과학의 지식과 방법, 과학적인 증거와 이론을 토대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 추리 과정과 논증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능력, 다양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 등을 포함한다.

과학적 탐구 능력은 과학적 문제 해결을 위해 실험, 조사, 토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 해석, 평가하여 새로운 과학 지식을 얻거나 의미를 구성해 가는 능력을 말한다. 과학적 탐구를 위해서는 과학 탐구 기능과 지식을 통합하여 적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며 과학적 사고력이 이 과정에 기초가 된다.

과학적 문제 해결력은 과학적 지식과 과학적 사고를 활용하여 개인적 혹은 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와 관련 있는 과학적 사실, 원리, 개념 등의 지식을 생각해 내고 활용하며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 분석, 평가, 선택, 조직하여 가능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문제 해결력은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반성적 사고 능력과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도 포함한다.

과학적 의사소통 능력은 과학적 문제 해결 과정과 결과를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며 조정하는 능력을 말한다. 말, 글, 그림, 기호 등 다양한 양식의 의사소통 방법과 컴퓨터, 시청각 기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제시되는 과학기술 정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 증거에 근거하여 논증 활동을 하는 능력 등을 포함한다.

과학적 참여와 평생 학습 능력은 사회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합리적이고 책임 있게 행동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새로운 과학기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지속적으로 학습해 나가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평가 부분의 내용에서는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가 요구되거나 지나치게 복잡한 계산 문제 위주의 평가를 지양하도록 되어 있다.

 

2019년 수능 물리 1의 문제가 위에서 정리한 교육목표를 얼마나 반영하는지 보기 위하여 표를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표의 점수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매긴 것이므로 주관적이다. 그러나 표에서 보듯이 “융합, 활용, 해결, 소통, 참여, 평생” 항목의 점수가 0에 근접하는 것에는 이견이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각 문제당 50점을 만점으로 20문제에 대해 평가한 것이므로, 20 문제 전체에 대한 만점은 1,000 점이다. 필자의 주관적인 점수로 2019년 수능 물리 I의 점수는 160점을 획득하여,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16점이다. 100 점 만점에 16점인 것이다. 필자가 점수를 짜게 주었다거나 해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다. 교육목표들을 고르게 반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낮은 점수가 될 수밖에 없다. 수능문제를 보면, 오히려 과학교육의 목표에 반하는 것이 아닌지, 출제자들의 물리역량이 적정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림 4-2) 각 항목은 1~5 점으로 평가. 지양해야 할 단순한 지식 암기와 지나치게 복잡한 계산은 – 점수로 반영. 이해는 10점 만점으로 하여 긍정적인 평가점수를 50점에 맞추었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 학생들은 특히나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문제는 과학공부의 방향에 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을 끼친다. 단지 분별력을 가르기 위해서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교육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수능에서 분명하게 제시하는 역할을 난이도 높은 문제가 제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제자의 편의 혹은 종래에 계속 그 영역에서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출제되어 왔기 때문에,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그러한 영역(힘과 운동, 돌림힘, 유체역학)에서 계속 계산 위주의 문제로 난이도를 높이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이 든다. 30분 안에 20 문항을 모두 풀고 확인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술적 계산을 요구하는 문제로 변별력을 가르는 것은, 오히려 과학교육을 저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난이도가 높지 않은 문제들도 교육목표에서 중시한 영역들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출제에 있어서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자문을 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물리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확인하고 독려하는 문제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지식을 많이 알고 있으면 빨리 풀 수 있는 위주로 수능의 문제들은 학생이 아닌 출제자 보호적으로 느껴진다. 학생들이 지식보다는 지식의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식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령 베르누이의 정리를 어떠한 물리적 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베르누이 정리를 대입해서 기계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보다 중요하다. 돌림힘이나 힘과 운동에서 현실적으로 별로 경함하고 사용하지 못할 문제를 학생들에게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보다는 현실의 건축물이나 교량, 자연에 나타나는 구조 등의 형태가 왜 그런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운동원리가 일상과 자연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너무 교과과정의 틀에 박힌 지식의 범주를 넘어서, 다른 교과와의 융합적 문제 그리고 교과서에서의 설명과 접근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독서를 자극할 필요도 있다. 교과서는 아무래도 많은 내용을 짧은 책에 담느라 과학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지식들을 요약하여 제시하는 성향에서 교과서는 자유롭지 못하며, 과학적 지식이 사회와 어떠한 관계와 과정을 통하였는지 과학사 및 과학사회학적 언급을 제대로 하기도 힘들다. 교과서의 지식 자체에 국한하여 출제하는 것보다는, 관련한 사고와 독서를 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제를 출제하여 학생들이 과학에 대한 긍정적 자극을 받도록 하는 일도 좋다고 생각한다. 국어영역에서 다양한 독서를 한 학생들이 유리하듯이, 과학에서도 독서를 한 학생들이 유리하도록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꺼려할 일은 아닐 것 같다. 독서와 실험적 사고, 합리적 추론이 중요하다면 마땅히 평가는 그러한 방향을 향하도록 해야 할 일이다. 교과내용과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라, 교과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정도라면 부담보다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깐 국어영역에 나오는 과학지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대로 인용하거나 변형한 과학지문들 중에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적지 않다. 하물며 아예 완전히 틀린 내용이 버젓이 여러 문제를 담는 지문으로 출제되었다가 뒤늦게 발견되기도 한다. 언어영역 5문제(43번 ~ 47번)가 딸린 2004년 수능의 지문은 엉터리 내용이었는데, 14년이나 지나서 우연히 발견되었다.[1]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출제자가 원문을 변경하면서 지문 자체가 완전히 틀린 내용으로 채워졌고 따라서 부속된 문제들이 제대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제되었고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서 많은 학생들의 희비에 영향을 미쳤다.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출제자가 내용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담대함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로 문제가 출제될 수 있는 시스템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아졌을까? 필자가 보기에 별로 나아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문제가 생겨서 학생들이 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2019년 지문을 보면, 말이 많았던 31번 문항의 지문도 문제지만, 27번 문제부터 32번 문제에 걸친 지문도 문제가 있지만 결국 걸러지지 않고 출제되었다. 32번은 단어의 용례에 대한 국어문제이므로 제외한다고 해도, 전체 45문항 중에서 5문항을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지문이었다. 먼저 31번 문항과 관련된 지문은 질량중심을 이해한 학생들에게는 쉬운 문제였기 때문에, 언어역량을 평가하기에 적절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는 2009 개정 교과과정의 내용에 ‘질량 중심’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특별히 물리를 선택한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문제는 짧은 시간에 꽤 긴 지문을 해독하고 문제와 선지들을 읽고 선택해야 하는 수능에서, 불필요하게 어려운 용어와 명쾌하지 않은 문장들로 구성된 지문이 아닐까 싶다. 31번 문항 외에 4문제에 걸친 지문을 살펴보면, 지문의 내용에 역시 문제가 있다. 지문에서 ‘우주론’이라는 용어가 여러 번 등장하지만, 우주론(cosmology)은 과학에서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써 많이 사용되는 과학용어이다. 학생들은 중학교부터 빅뱅 우주론이나 정상 우주론에서 우주론이라는 단어를 만나며, 고등학교에서도 빅뱅 우주론은 등장한다. 지문에서의 우주론은 우주관으로 쓰였어야 했다. 우주론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문제와 선지를 읽으면 오히려 혼동된다. 그 외에 지문이 과연 학문적이나 교양과학적으로 가치 있는 수준인지 동의하기도 어렵다. 가령, 지문에서 “그는 만유인력 가설로부터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들을 성공적으로 연역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연역한 것’이 아니라, ‘도출한 것’이다. 뉴턴은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을 가정하여 그 이전에 나왔던 케플러의 법칙들을 수학적으로 유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알에 또 “… 실측 값을 연역함으로써”는 구절이 나오지만, 역시 “… 실측 값을 계산함으로써”가 정확하다. ‘연역하다’라는 표현이 각 문장에서 정확한 문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에 수능의 물리I 문제를 물리학자들이 수험생과 같은 조건에서 푼다면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에게 만점이 나올 수 있을까? 시험지를 받아 든 물리학자들은 문제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수학은 어떨까?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만점을 받을 수 있을까?[2] 어떤 생각을 할까? 국어는? 긴 지문과 45개의 발문, 발문의 다섯 배인 225개의 선지를 80분 안에 정확히 해독하고 요구하는 정답을 작가 혹은 국문학자가 최상위 학생들만큼 풀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리I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능 전 영역에서 물리학자가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영역에서 변별력을 요구하고, 수학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논리와 사고력을 자극할 수 있는 문제들이 별로 보이지 않으며, 삶을 살거나 대학에서 여러 전공들을 하는데 불필요한 수준까지 그리고 좋지 못한 지문들을 바탕으로 물어보는 언어영역의 문제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며, 영어권의 대학생이나 교사가 70분 동안 긴 지문과 45개의 문항, 200개가 넘는 선지 속에서 만점을 받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3] 그리고 과연 이러한 평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생길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상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평가하자는 수능 문제를 대학에서 상위 성적을 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다시 풀라고 해도, 상위권 수험생들보다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는 뉴스를 본 것 같다. 실제적으로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변별력을 부여하여 줄 세우기에 다급한 인상을 받는다. 문제들 자체도 교육목표를 긍정적으로 자극한다기보다는 부정적으로 학생들의 학습태도를 수동적이고 기계적, 기술적이게 강요한다고 생각하며 당연히 교육목표를 저해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수능이 교육과 학생과 대학에서의 역량을 위한 문제라고 인정되지 않는다.

[1]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5문제 딸린 지문 ‘엉터리'” http://bitly.kr/W0PA1 기사 참고, 처음 문제를 제기한 김찬주 교수의 페이스북 글 http://bitly.kr/z1XvK 참고

[2] 아주대 박형주 총장은 지난 8월 초 세계수학자대회에 가서 전 세계 수학자들에게 수능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고 건넸다. 여기저기서 ‘gosh'(어이쿠)라는 말이 나왔다. 외국 학자들은 “창의력보다는 기술적인 능력만 요하는 문제”라고 했다. http://bitly.kr/uz0j4  및 http://bitly.kr/be5M7 참조

[3] 교사들은 정답을 거의 맞히지 못했다. 다섯 명 중 정답률이 가장 높았던 매트는 “이런 지문은 어디서 구하는 거냐”라고 의아해했다. 진행자인 조쉬도 “아무도 일상 대화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동의했다. http://bitly.kr/TVOaF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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