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중력, 자연의 궁극을 알고자 하는 인간이 더 나가지 못하고 있는 최전선이다. 인간의 지적 지평선 너머에 있는 양자중력(Quantum Gravity)을 공략하기 위하여 물리학자들은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전선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아직까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양자중력 이론은 표준모형에서 만나지 못한 중력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통합된 관점에서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바램을 담은 것이다. 중력은 자연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에 대한 관점을 나타내며, 다른 세 힘은 시공간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인 기본입자들이 빚어내는 역학원리를 기술한다. 네 개의 힘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은, 무대와 배우를 하나의 개념으로 기술하고자 하는 시도로 생각된다. 아직 세 힘의 통합도 불완전하여 대통일 이론(Grand Unified Theory GUT)[1]의 후보가 여럿 제안되고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중력까지 포함하는 이론이 아직 뚜렷한 역학이론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이른 바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확장된 관점에서 더 단순하게 자연을 기술하려는 노력은 자연에 대한 통찰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양자중력 이론을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EoT)[2]으로 부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끈이론(string theory)[3] 혹은 고리양자중력(loop quantum gravity)[4], E8 이론[5] 등과 같은 양자중력 이론이 제안 되었지만, 아직 검증되지 못하였으며 각 이론은 시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수학적 배경도 다르다. 물론 상당히 어려운 수학을 대동하고 나름의 세계관을 갖고 탐험하고 있으며, 아직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단서도 미약하지만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여기서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론에서 지적했듯이 운동상태에 따라서 그리고 물질의 분포에 따라서 달라지는 시공간은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으나, 아직 제대로 답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지지 않는다. 고리양자중력은 이러한 면에서 시공간을 연속이 아닌 양자화된 관점에서 기술하며 양자중력에 접근한다. 정지영상을 잇따라 보이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이는 감각의 착각과 불연속적인 작은 점으로 구성된 화면을 보면서 실제 자연처럼 연속된 이미지로 느끼는 것, 물론 실제 자연 역시 미시적 단위에서 연속적이지도 않다. 연속은 관념 혹은 수학적 추상에서 비롯된 개념이며 물리적 실체, 시공간이 과연 그렇게 무한히 작은 점들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세 힘을 통합적으로 기술하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과 나머지 한 힘인 중력에서도 최소작용의 원리로 각자의 영역에서 이론적 전개를 할 수 있지만, 두 작용(action)을 하나로 통합하여 기술할 수 있는 양자중력 이론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작용의 원리를 바탕으로 자연을 기술하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자연에 왜 그렇게 최소작용의 원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뉴턴의 운동 제2법칙 대신에 택한 ‘최소작용의 원리’라는 수학적 형식화 대신에 두 종류의 작용을 통합할 수 있는 더 근원적인 어떤 원리 혹은 수학적 형식화가 있을까?
아무 것도 빠져 나올 수 없다고 여겼던 블랙홀에서 호킹복사가 일어날 수도 있듯이, 인간의 지적 지평선 너머에 있는 양자중력에서 무엇이 인간과 만나게 될 지는 모를 일이다.
양자중력은 빅뱅의 순간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시공과 물질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을 드러내줄 수 있을지 모른다. 뉴턴의 운동법칙 밑바닥에 절대 시간과 공간을 암묵적으로 가정했던 것처럼, 양자중력은 인간이 암묵적으로 가정한 역학체계의 어떤 전제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할 지도 모른다. 빛이 흑체복사와 속도의 한계치로 인간에게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드러내게 해준 것처럼, 빛이 무엇으로 양자중력에 대한 인간의 열망에 볍씨를 물어다 줄지 혹은 암흑을 이해함으로써 그 길이 열릴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우주의 어디선가는 어느 지적 생명체가 이 비밀을 이미 풀어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먼 곳과 먼 과거를 만나고 있는 지구의 대표 생명체 인간은 언젠가 그 비밀을 풀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지성이 크게 내디뎠던 발걸음은 문명의 변혁을 넘어 우리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성숙하게 하고, 진정한 인간의 진화를 자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양자중력보다도 수많은 분자들이 끊임 없이 작동하는 생명 현상과 세포 수보다 많은 시냅스를 갖는 인간의 신경세포 지도를 알게 되는 날이 훨씬 먼 미래가 될 지도 모르겠다. 과학은 관찰을 통하여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제와 원리를 찾아나갔던 여정은 반복될 터이지만, 생명과 흔히 정신으로 표현되는 영역에 있어서 인간의 편견은 아직도 너무도 깊이 박혀 있고 아직 보지 못한 관찰은 너무도 많이 넘친다. 20세기 중반 분자생물학을 통한 생물학의 혁명으로 유기체를 분자적 수준에서 보기 시작했던 것을 고려하면 꽤 빠르게 환원주의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창발성을 이해하고 환원주의적 설명을 보완할 수 있는 지혜에 다다르기에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축적되어 가는 방대한 데이터와 분자 그리고 현상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 뇌의 한계를 인공지능으로 비껴갈 수 있겠지만, 비밀의 문에 열쇠를 꽂고 돌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젠가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답변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영역에 집단의 도덕과 가치를 들임으로써,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을 넘어 개인이 사회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더 먼 곳을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게 될지 미래 사회가 궁금하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진화의 궁극적인 모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발견과 깨우침으로 넓어지는 인간의 영역이 공간적으로 어디까지, 시간적으로 어느 시점까지, 우리 내부에 대해서 무엇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또한 확장될 수 없이 영원히 인간 너머에 있을 영역이 인간에게 무슨 의미일 것이고, 그 영역에서 전하는 최종적 가르침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1] http://bitly.kr/dY9sW 참고. 필자가 학교에 있었을 때 책을 구매하러 먼저 찾는 곳은 종로서적이었다. 소광섭 교수님이 저술한 “대통일 이론”(http://bitly.kr/DyDJS)을 못 찾고 직원께 문의하였더니 안내해준 서가에는, ‘남북 통일, 분단, …’과 같은 서적들이 있는 사회, 역사 서가였다. 잠시 당황했지만, 결국 잘 찾아서 사왔었다. 지금도 빛 바랜 그 책을 보면 그 시간이 즐겁게 기억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