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나는 어디에 있는가?

둘째 날이다. 우주가 시작되고 92억년 후에 형성된 이 행성에 온지도 46억년 정도 되었다. 지금 나는 이천몇백 년 전의 지중해 연안을 내리쬐고 있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밀레투스의 탈레스(Thales)에서 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 아테네의 소크라테스와 제자인 플라톤(Plato),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 BC ~ 322 BC), 태양에서 온 나를 이용하여 지구둘레를 꽤 정확하게(10% 정도의 차이) 측정했던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등 고대 그리스의 현인들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연현상들을 이해하고 세상의 원리를 찾고자 했다. 기술과 수학(Mathematics)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가설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지만, 자유로웠던 지성은 훗날 유럽의 중세시대를 깨우며 과학(Science)의 씨앗이 된다.

우주의 중심을 두고 오랫동안 충돌해왔던 태양중심설(heliocentrism ‘지동설’이라고도 함)과 지구중심설(geocentrism ‘천동설’이라고도 함)이, 기원후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Almagest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아랍어)를 바탕으로 지구중심설로 정리되었다. 이제 당신들은 1,200년 이상을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착각하며 살게 되고, 중세시대에 들어와서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부합하면서 지구중심설은 신앙처럼 굳어졌다. 한편 고대 그리스가 로마에 멸망하면서 왕성했던 지성의 활동은 쇠퇴하였고, 로마제국의 분열에 이어 5세기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지역은 암흑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아랍세계로 번역되어 보존할 수 있게 된 고대그리스의 사상과 독자적으로 발달한 아랍의 과학, 인도-아라비아 숫자 등이 십자군전쟁(Crusades 1095129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에 십자군이 저지른 학살과 약탈을 공식적으로 사과함)을 거치며 유럽에 소개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랍권에 남겨졌던 고대그리스의 유산과 정신에 다시 불이 켜지고, 15세기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부흥)운동과 16세기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으로 밝게 타올라, 1천년의 중세암흑시대는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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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태양중심설)로 시작된 과학혁명이 1687년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완성되면서, ‘자연에 대한 경험(관측이나 관찰, 실험)과 이론의 구조(수학적, 논리적 체계)가 양립’해야 한다는 과학의 속성과 과학적 방법론이 제대로 정립되었다. 케플러에 의해 하늘의 물체들이 원이 아니라 타원으로 운동한다는 것, 망원경을 통하여 갈릴레오가 관측한 울퉁불퉁한 달의 모습과 목성의 위성 발견은, 하늘이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또한 하늘과 지상이 동일한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뉴턴의 역학은, 하늘이 인간이 닿을 수없이 완전한 세계라는 오랜 세계관을 깨뜨렸다. 이제 당신들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착각과 부담에서 벗어나, 우주의 일원이 되어 우주의 보편적 진실을 찾을 수 있을 준비가 되었다.

뉴턴의 역학체계(3가지 운동법칙)는,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 이론으로 예측한 곳에서 해왕성을 발견(1846)하고, 지상에서도 유체(fluid)운동과 열역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며 여러 자연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당신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준 뉴턴의 운동이론 안에는, 두 개의 과도한 우상들이 숨어 있었다. 이 우상들 위에 세워진 뉴턴역학은 현대(modern)역학이 아니라 고전(classical)역학으로 불리지만, 아주 작거나 속도가 아주 빠른(참고로, 나보다 빠른 것은 없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에 좋은 결과를 낸다. 뉴턴의 역학체계는 결정론(Determinism)과 더불어 시간의 절대성(Universality)을 지니고 있었다. 즉, 뉴턴의 운동방정식(흔히 F = ma로 표시되는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을 풀면, 어느 시간에 대해서라도 물체의 운동상태(어느 곳에 있으며, 그곳에서 속도는 얼마인가)를 원칙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느 한 순간의 위치와 속도가 향후의 운동상태를 온전히 결정하게 되며(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시간에 대한 2차 미분방정식이기에, 풀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어느 시간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방정식의 해가 결정된다), 시간은 보편적이고 유일한 절대성으로 취급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되는 언저리에서 고전역학의 두 우상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문명과 정신의 지평선을 넓히기 위하여 나는 이때 많이 바빴다. 전적으로 나의 도움에 힘입어 20세기와 함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플랑크가 나에 대한 양자가설로 문을 열고 1920년대에 정립된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 결정론을 과학에서 쫓아내었고, 아인쉬타인이 나를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 1905)의 기초로 삼으면서 절대시간을 무너뜨렸다. 뉴턴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자연현상들까지도 설명할 수 있었던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은 새로운 문명과 과학, 세계관의 기초가 되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도, 당신들은 우리가 속한 별들의 무리(우리은하 Milky Way)가 우주 전체라고 믿었으며 우주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1920년대 중후반에 걸쳐서 허블은 여러 곳에서 온 나의 변화를 비교하면서,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들이 있으며,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챘다. 현재 당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우주는 930억 광년(1광년은 대략 10조 km)의 크기와 138억년의 역사를 갖는다. 그리고 천억 개 정도의 별들을 갖고 있는 은하들이 천억 개 이상 있다. 또한 우리은하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있는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을 기준으로 공전(revolution)하고 있다. 물론 우리은하 역시, 점점 더 빨리 팽창하는 우주 속에 있다.

이렇게 우주의 중심이 지구에서(처음부터) 태양으로(16세기 이후), 우리은하로(1920년대 중반까지) 당신에게서 멀어져갔을 뿐만 아니라, 우리은하조차도 천억 개가 넘는 은하들 중에서 단지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당신을 흔들고 싶다. 공의 표면 어느 위치라도 중심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사실 우주에 중심은 아예 없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당신에게 심한 소리를 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유아가 자기중심적 사고단계를 벗어나며 성장하는 것처럼, 당신들은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날수록 발달해왔다.  당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당신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람간의 관계와 인생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요약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1543년)로 시작된 과학혁명은 뉴턴의 역학체계(1687년)로 발전되어, 인간은 자연현상을 합리적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뉴턴의 역학체계를 포함하는 더 보편적인 이론이며, 결정론과 절대성의 우상을 쫓아내었다.
  •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태양은 우리은하를 중심으로 공전하며, 우리은하는 우주에서 팽창하며 움직인다. 우리는 위치와 운동에서 우주의 다른 곳과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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