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 나는 어떻게 여기 있을까?

셋째 날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행성인 지구와 나의 관계를 말하고 싶다. 그러기 전에 당신과 친숙하다는 이유로 나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것이 걸려서, 간략하게나마 말해야겠다.

당신들은 나를 빛(light)이라 부르기도 하고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 혹은 광자(光子 photon)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나의 주된 특성인 파장(wave length 파동의 길이)에 따라서 나를 전파, 마이크로파, 적외선, 빨주노초파남보의 가시광선(可視光線 visible light), 자외선, X, 감마선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이렇게 나를 나타내는 이름들이 많은 것을 보니,  당신과 내가 꽤 친숙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http://microsystems.mju.ac.kr/386

 

오랫동안 나의 정체에 대하여 이렇게 저렇게(파동이다, 입자다) 단정 짓던 당신들은, 결국 나를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갖는 물질의 이중성(duality)으로 교묘하게 말하는 듯하다. 양자역학의 오묘한 특성 탓이고, 나를 제대로 알기에는 너무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러나 나는 우주초기에 태어난 다른 기본물질들과 마찬가지로, 양자장론(QFT Quantum Field Theory)이라는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모두 만족시키는 수학체계에서, 공간에 퍼져 있는 장(場 Field)으로 명확하게 표현된다. 단지 퍼져 있는 정도가 당신이 나를 대하는 태도(관측 혹은 실험)에 비하여 작거나(입자성을 나타냄) 클(파동성을 나타냄) 뿐이며 모호하고 기괴한 것이 아니다. 나는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표현될 정도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친 김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하고 내 소개를 마치려고 한다. 당신이 기묘하다고 여겼던 나의 정체성을 더 증폭시킬지도 모르겠지만. 20세기 들어서 뉴턴역학을 고전역학으로 만들어버린 두 가지 이론, 즉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은 아직 완전히 화해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자연을 기술하는(describe) 두 방식을 하나의 관점으로 통합할 수 있다면, 현재의 문명과 정신을 질적으로 넘어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같이 느껴진다. 나는 다가올 그 시기에도 당신들과 함께 하고 싶다. 이제 내 소개를 그만 마치고 다시 여정을 계속 한다.

138억 년 전에 있었던 빅뱅과 급팽창, 그리고 팽창이 가속되는 우주가 92억년 정도 흐른 후 당신들이 사는 태양계가 형성되었다. 첫날 이야기했듯이 당신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로 미루어 볼 때, 먼 옛날 이 근처에는 초신성이 있었다가 폭발하며 당신과 태양계를 만들 밑 재료를 제공했다. 초신성의 잔해인 거대한 분자구름이 중력에 의해 뭉치며 뜨거워지다가,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에 중심에 있던 수소원자핵들이 헬륨핵으로 융합하며 발화되어 원시태양이 만들어 졌다. 이후 몇 천만년이 흐르는 동안, 동결선(frost line 물이 얼 수 있는 정도의 영역이며, 지금의 소행성대 인근) 내에서는 지구형 행성(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 바깥에서는 목성형 행성(목성, 토성)과 천왕성형 행성(천왕성, 해왕성)이 형성되었다. 행성형성에 참여하지 못한 수많은 부스러기들이 한동안 폭탄처럼 떨어지며 원시행성을 달구었다.

이미지 출처 : http://astronomyonline.org
원시지구와 원시달의 충돌

여러 정황들로 볼 때, 45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된 원시지구 가이아(Gai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는 곧 화성 크기의 원시행성인 테이아(Theia 달의 어머니 여신)와 충돌한 후 현재의 지구(Earth)와 달(the Moon)이 되었다. 이때의 충돌로 원시지구는 조금 더 커져서 현재의 지구크기가 되었으나 화성크기(현재 지구의 반 정도 반지름)의 테이아는 더 작아져서 지금의 달(현재 화성의 반 정도 반지름)로 변하였고, 지구의 지축은 23.5도 기울어졌다.

 

뜨거운 마그마로 균일했던 지구내부가 식어가며 가벼운 규산염 계열의 광물들이 떠올라서 표면에 지각이 만들어 졌고, 철과 니켈 등 무거운 물질들이 안으로 향하면서 지구의 핵이 형성되었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인 수소와 헬륨으로 형성되었던 처음의 대기는 이미 우주로 날아가 버렸고, 화산활동과 마그마에서 분출한 이산화탄소, 메탄, 수증기 등으로 원시대기를 만들어갔다. 본격적으로 바다가 생겨난 것은 몇 억년이 더 지난 후에(약 38억 년 전), 얼음을 많이 함유한 운석들이 후기대폭격(Late Heavy Bombardment)이라 불릴 정도로 지구에 많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바다가 만들어지면서 해양지각이 식어갔고, 대기 중에 많아진 수증기는 비가 되어 내리며 대륙지각을 식히고 물질들을 바다로 흘려보냈다. 이때의 지구는 이미 생명이 나타날 수 있을 정도로 식었지만, 두터운 대기의 높은 온실효과와 왕성하게 분출되는 마그마로 뜨거웠다.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는 당시의 암석들이 지표에 남아있는데, 그곳에서 고생물학자들은 지구초기의 미생물 흔적들을 현미경으로 어렵게 발견하고 있다. 어쨌든 이 시기에는 생명이 지구에 터를 잡았다.

이미지 출처 : zum학습백과

지질시대의 명칭을 보면, 지구가 형성된 첫 시기인 명왕누대(Hadean, Hades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지옥의 신이다) 외에는, 시생대(始生代), 원생대(原生代), 고생대(古生代), 중생대(中生代), 신생대(新生代)와 같이 生자를 넣어 이름을 번역할 정도로 지구환경과 생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갔다. 늦어도 시생대에는 이미 생명이 탄생했고, 광합성으로 산소(O2)를 만드는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가 나타나서 산소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산소는 지구변화와 생명진화의 주요한 키워드가 된다. 생명체와 관련한 이야기는 내일 더 하기로 하자.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영역으로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요약
  • 일상에서 경험하는 빛은 파동으로 볼 수 있으며, 파장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진다.
  • 전파, 마이크로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의 순서로 파장이 짧아지며 에너지가 커진다. 에너지가 클수록 세포손상,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
  •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이 만난 양자장론과 일반상대성이론(중력이론)은 현재까지 자연을 가장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실험으로 확인된 수학체계들이다.
  • 지구환경은 생물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했기 때문에, 시생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 지질시대 이름들은 生을 넣어서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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