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 지구의 기원과 진화

“이 세상은 언제 시작되어, 지금과 같이 되었을까?”

겨울철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오리온자리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오리온의 허리띠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오리온성운에서는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우리 태양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놀라운 현대 과학기술 덕분으로 우리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리온성운에서 현재 150 개가 넘는 원시 항성계를 관측할 수 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과 별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 행성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들이 생겨나고 있는 장엄한 광경을 세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스와 먼지들이 모여서 중심부가 밝게 빛을 내고 있는 아기별과 행성이 될 가스구름이 응축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낮을 지배하고 지구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도, 밤하늘에 달 다음으로 밝아서 우리에게 친숙한 금성과 목성, 월급날과 비슷한 주기를 갖고 우리 주위를 돌고 있는 달도, 물론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도 이렇게 만들어졌으리라.

 

현대 과학 중에서 가장 잘 검증된 이론과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게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약 138억 년 전에 생겼고, 우리은하에 속한 태양계의 나이는 우주 나이의 1/3 정도 되는 46억 살 정도가 된다.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우주의 가스와 먼지가 중력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모였다. 대부분의 물질들이 중심으로 뭉쳐지고 중심부의 중앙은 더욱 중력으로 뭉치면서 온도가 올라갔던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46억 년 전이다. 중심부 주변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물체들의 소소한 뭉침 현상이 빈번하게 있었고, 작은 덩어리들이 서로 부딪히고 주변의 먼지들을 끌어당기면서 덩치를 키워갔다. 이러한 좌충우돌을 겪으면서 큰 덩어리는 중력 때문에 주변의 물질들을 모으기에 유리했고, 아주 커다란 충격이 아니라면 자기 형태를 유지하고 오히려 더 커질 수 있게 된다.

처음에 있던 가스와 먼지의 약 4분의 3은 수소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헬륨 원자였으나, 탄소와 산소, 철과 같은 원소들도 약간 섞여 있었다. 이것은 우리 태양계를 형성하던 물질이 초신성超新星supernova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스와 먼지는 과거 언젠가 지금의 지구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별이 장렬하게 폭발하며 남긴 잔해다. 별의 잔해가 모여 다시 다음 세대의 별과 행성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태양은, 아마도 우주가 생기고 나서 처음 우주를 밝혔던 1세대 별의 손자뻘에 해당하는 3세대 별로 추정되고 있다.

여느 우주처럼 태양계를 이루는 재료 대부분의 원소도 수소와 헬륨이었다. 대부분의 물질들은 중심부에서 중력에 의해 수축하면서 수소가 헬륨으로 융합하여 캄캄했던 이곳에도 드디어 우주의 등대인 별이 나타났다.

과학적 이론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지구에 떨어진 초창기의 태양계 관련 기록, 달에서 가지고 온 광물 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태양의 형성과 비슷한 시기에 태양계를 구성하는 행성과 위성, 소행성과 혜성 등이 생겨났다. 따라서 몇 십억 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은 지구와 달리, 우주공간에서 오랫동안 잘 보존되다가 지구로 쏟아진 운석들은 태양계 초창기 모습을 담고 있다.

밤하늘에 신비롭게 빛을 발하며 떨어지는 유성들은 대부분 대기 중에서 타버리지만, 어떤 것들은 지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운석으로 불린다. 건조한 사하라 사막 등은 운석이 잘 보존되기 때문에 운석 사냥꾼이 좋아하는 장소다. 과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운석들은 직거래나 운석 전문 온라인 장터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몇 만 원정도로도 아마존에서 초기 태양계의 모습을 간직한 운석 반지나 운석 목걸이를 구매할 수도 있다. 아직 외계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우주 바이러스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태양계는 여러 행성과 수많은 소행성 등으로 구성되었지만, 태양은 태양계의 나머지 물체들을 모두 합한 것의 1천배 정도의 물질을 독식하고 있는 절대강자다. 지구만이 아니라 태양계의 어느 것도 태양의 절대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태양의 영향권을 의미하는 태양계의 직선거리는 빛의 속도로 약 1년 정도, 그러니까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도 10만 배 정도이므로, 태양계는 지구가 살아가는 세계보다도 약 1천조 배 정도 큰 방대한 세계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인 지구는 도대체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일까? 어떻게 해서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 수많은 생명들이 가득하고, 생명체들 중에서 하나의 종이 지구를 벗어나 달 위를 걷게 되고 태양계 끝자락까지 탐사선을 쏘아 보낼 수 있게 되었을까?

지구가 겪었던 수많은 사건 중에서 첫 번째로 마주한 것은 지구의 가족인 달과 관련된다. 지금도 달과 지구는 뗄 수 없는 사이로, 달이 지구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은 태양계의 절대강자인 태양보다도 2배 정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히 빛나는 태양이지만, 달은 지구 표면에서 바닷물에 더 큰 영향을 행사하고 있으며 지구의 내부로도 중력을 작용하여 맨틀과 핵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달은 지표면에 붙어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간의 생활주기인 한 달(月)과도 밀접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과거에 달은 지구와 더 가까이 있었고 지구 내부와 조수의 흐름을 더 지배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지금의 지구와 달이 되기 전에 엄청난 충돌을 한 주인공이었다. 달에서 가져온 암석과 표토의 분석, 지구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정보와 자연을 지배하는 자연원리에 따른 계산과 시뮬레이션 등의 다각적인 분석과 검증에 따르면, 초기지구는 45억 년 전에 거대한 충돌을 겪었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충돌이었던 그 사건이 일어난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현재의 화성(지구 반지름의 반 정도) 크기나 되는 천체가 초기 지구를 빗겨 충돌하면서, 지축이 지금처럼 23.4도 정도 기울어졌고 충돌의 파편들을 끌어당기면서 지구는 충돌 전보다 조금 더 커졌다. 그리고 지구와 충돌한 천체는 지구 가까이에서 다시 부스러기들을 뭉쳤지만 크기가 줄어들어 지금의 달(화성 반지름의 반 정도)이 되었다.

초기 지구와 충돌하여 달을 낳았던 천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 셀레네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테이아(Theia)라고 부른다. 이렇게 지구는 거대한 충돌을 거쳐 성장했고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달리 자신에 비하여 엄청나게 큰 위성을 갖게 되었다. 오래 전에 달은 지금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형성되었으므로, 아주 커다란 달이 밤을 환하게 비춰서 보통 때는 별을 보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그러나 지구 그림자에 달이 완전히 가려져 깜깜해지는 월식에는, 무수한 별들이 갑자기 나타났을 것이다. 찬란히 솟아난 별들을 배경으로, 충돌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못한 달의 맨 얼굴에는 지각이 격렬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달은 충돌의 아픔을 멀리한 채로 지구로부터 조금씩 멀어져서 지금과 같은 위치, 빛의 속도로도 약 1.3초 걸려야 도달하는 곳에서 지구와 관계를 맺고 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달은 현재 약 38만 km 떨어진 곳에서 1년에 3.8㎝ 정도씩 멀어지고 있다.

이제 달에서 눈길을 거두고 그동안 지구에서 일어난 일들을 잠깐 살펴보자. 뜨거웠던 원시지구는 처음에 내부의 어느 곳이나 비슷한 성분으로 균질했고, 표면과 내부의 온도는 지금 태양의 표면온도와 비슷한 정도로 뜨거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지구의 열이 우주로 방출되는 동안, 철이나 니켈 같이 무거운 금속원소들은 지구 중심을 향하며 중심핵이 되었다. 규소나 산소와 같이 가벼운 원소들은 바깥으로 떠오르면서 미량의 여러 성분들과 섞여서 다양한 광물을 이루고, 광물들은 암석을 형성하며 굳어져서 지각이 형성되었다. 지각과 중심핵 사이에는 지구 부피의 80%를 차지하는 맨틀이 생겼고, 지각 활동을 결정하며 지구의 진화와 지표면의 모습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지구 내부에서 생명체들의 터전인 지각으로 나오기 전에 언급해야 할 것은, 맨틀 아래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외핵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지각을 뚫고 직접 맨틀에 다다른 적도 없는 바에, 지각의 100배나 더 깊은 곳에서 시작하는 외핵이 생명체와 무슨 연관이 있을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핵은 비록 맨틀 안쪽에 있지만, 얇은 지구의 대기권을 넘어 지구 반지름의 10배 정도나 되는 곳까지 뻗어나가 우주에서 오는 강력한 입자들을 쳐내고 있다. 만약에 외핵이 회전하며 발생시키는 지구 자기장이 없었더라면, 생명체가 번성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구 자기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구의 외핵이 만드는 자기장은 극지방에서 들어가거나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장이 미처 다 처내지 못한 우주입자들이 지구 대기와 충돌하며 빛나는 오로라를 고위도 지방에서 볼 수 있다. 오로라는 외핵이 지구 생명체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지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생명체 입장에서 직접 마주하고 있는 대기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겠지만, 철을 듬뿍 함유한 외핵의 회전에 의해 발생한 자기장이 지구 멀리서 지구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지구의 대기조차 먼 옛날에 강력한 태양풍을 견디지 못하고 우주로 흩어져서 지구는 불모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지구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지구의 역사를 구분하는 지질시대의 우리식 이름에는 생명의 생(生)이란 글자가 모두 들어가 있다. 명왕누대 이후에 생명이 시작한 시생(始生)누대와 이후의 원생(原生)누대 그리고 현재를 포함하는 현생(現生)누대가 그렇다. 지구의 변화는 크게 보아서, 지각활동과 생명활동이라는 두 가지의 활동 때문이다. 생명체가 지구에 의존하듯이, 지구도 생명체에 크게 의존하여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해온 것이다.

당연하지만 지질시대의 첫 시기는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상상 속의 지옥보다도 훨씬 가혹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지옥에서는 죄를 지은 귀신이라도 있겠지만, 지옥보다 더 가혹했던 지질시대의 첫 시기를 과학자들은 명왕누대(Hadean)라고 부른다. 지옥의 지배자인 하데스가 다스리는 시대라는 뜻인데, 하늘에서는 여전히 커다란 운석들이 땅에 쏟아지고 연약한 지각은 맨틀의 움직임으로 격렬하게 요동쳤을 것이며, 수많은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메탄과 이산화탄소, 황과 수증기로 뒤덮인 대기는 지구의 열을 차단하는 온실효과로 여전히 불지옥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운 우주에서 스스로 핵연료를 태우는 별이 아닌 다음에야, 행성이 계속하여 뜨거운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물론 여전히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과 태양풍 그리고 맨틀이 공급하는 열에너지와 방사성 물질들이 붕괴하며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지각은 식어갔고 두꺼워지면서 맨틀의 영향이 줄어들고, 하늘에서 쏟아지던 운석들도 줄어들게 되었다. 38억 년 전에도 이미 지구에 바다가 형성되었다는 지질학적 증거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그 정도면 생명이 어디선가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약 38억 년 전에는 깊은 바다에서도 해양지각이 만들어지는 해령 근처의 심해열수구에서 생명이 출현했을 것으로 다수의 관련 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머나먼 과거이다. 원시지구와 거의 유사한 환경을 실험실에 구현하고 오랫동안 실험하면서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심해열수구 가설은 유기체가 탄생하기에 적합하다는 환경적 특징만이 아니다. 심해열수구는 다른 심해보다 훨씬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특별한 곳이며, 여러 생명체들의 DNA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형질을 분석하여 추정하는 최초의 생명체 LUCA(the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특성과도 어울리는 환경이다. 물론 지구 너머의 외계 어디선가 왔을 수도 있겠지만, 그 생명체가 지구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었을지 혹은 혹독한 우주에서 과연 탄생할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지구 생명체의 기원은, 보다 온순해진 지구의 어느 곳에서 시작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 같다.

내일은 생명의 진화가 인간으로, 원시인에서 문명사회로 발달해 온 몇 십 억 년의 시간을 짧게 이야기하게 될 것인데, 미리 양해를 구하며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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