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인간의 출현과 발달

첫째 날, 지구가 형성되고 불덩이 지구가 식으며 지구의 내부가 여러 층으로 분화되고, 바다에서는 생명체가 생기며 지구는 보다 복잡한 시스템이 되었다. 복잡해진 지구는 이후에 스스로 변화를 거칠 수밖에 없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것들이 넘치고 있다. 미약하게 출현한 생명체는 물론 복잡한 생명체가 아니고 가장 단순한 형태였을 것이다. 생명의 첫 시대를 살아간 작은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일은 아주 오래 된 암석을 찾아 얇게 잘라서 현미경으로 찾는 어려운 일이다. 지각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사라지고 생기며 변화했기 때문에, 생명은 고사하고 생명의 선조가 살았던 시대의 암석을 발견하는 것조차 지금의 지구에서는 어렵다. 46억년 가까이 되는 지구의 역사에서 커다란 사건이 적지 않았고 이것들을 다 얘기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우리가 살펴보려는 주제와 너무 동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평균온도를 15℃정도로 유지할 수 있게 만들고, 미생물이 보다 효율적인 대사를 하며 고등생물로 변했으며, 식물이 번창함으로써 다양한 동물들이 나타나게 한 사건, 약 25억 년 전에 일어났던 산소대폭발 사건을 짧게 얘기할 필요를 느낀다. 산소가 거의 없던 원시대기를 산소가 풍부한 대기로 바꾼 주역은 아마도 남세균(藍細菌Cyanobacteria)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궁무진한 태양에너지를 받고 원시대기에 풍부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산소로 바꾸는 테라포밍(행성개조 Terraforming)이 일어난 것이다. 반응성 높은 산소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들은 사라지고, 산소를 바탕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대사할 수 있는 생명체들이 나타났다. 또한 대사에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환경에 종속되던 생명체는 풍부한 빛과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스스로 양분을 생산할 수 있는 독립성을 획득하게 된 것도 생명의 진화 분기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기 중에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줄어들면서 지구는 최초로 빙하기를 겪을 정도로 냉각되기도 했다. 지구환경에서 생명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지질시대 이름에 생명의 生자를 넣는 것이 역시나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또한 산소 농도가 증가하면서 대기 중에 오존층이 형성되어 태양에서 비추는 강력한 에너지 영역인 자외선을 막아서, 땅 위에 생명체가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제 생명체는 보다 빠르고 다양하게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이 지구에 마련되었다.

산소를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대사를 할 수 있게 된 생명체들은 더욱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했고, 드디어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생명체 화석들이 나타났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오래된 생명체가 시작되는 시기는 자연스럽게 고생대(古生代)로 불린다. 이후에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생명체인 공룡들이 지구에 군림하던 중생대가 지나고, 공룡 대신에 먹이사슬의 상층부를 차지하게 된 포유류가 득세하는 신생대에 들어서 인류의 조상이 나타났다.

진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종들이 분화한 것처럼, 인류의 조상도 6백만 년 전에 침팬지의 조상과 결별하여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었다. 2백만 년 전에는 Homo 속을 이루다가 30만 년 전 현대인과 같은 종인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나타났다. 현재는 Homo 속에 속하는 생물종이 하나만 남았지만, 3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가 약 10만 년 전에 고향을 떠나 세계 각지로 이동하면서 다른 호모 속 인류들을 만나고 교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유전학적 분석에 의하면, 우리 조상이 만났던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 데니소바인(Homo denisova)의 흔적 일부가 현대인의 유전자에 남아있다.

여기서 잠깐 생물종의 이름을 나타내는 규칙을 짚어보면, 사람의 이름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집단에 속하였는지를 나타내는 성에 해당하는 속명이 먼저 나타나고 개인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이름에 해당되는 생물 고유의 종 명칭이 뒤따른다. 마치 우리 한국어 이름과 어순이 같고, 이름에 요구되는 기능도 같다. 그러니까 여러 동물들 앞에서 나를 소개한다면,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 장 형진’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생물종을 두 단어로 표기하는 이명법(二名法)이 사람 이름과 다른 규칙은, 앞에 오는 속명은 대문자로 뒤에 오는 종명은 소문자로 표기하며, 다른 단어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탤릭체를 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지구의 동물모임에 나가서 방명록에 이름을 써야 한다면, ‘호모 사피엔스 장형진’으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아직도 인류의 고향과 생일은 확실하지 않다. 유전적 연구와 화석 연구를 바탕으로 연구하지만 더 많은 자료가 발견되면서 변동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인류는 20만 년 전 혹은 30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여겨지며, 동쪽인지 남쪽인지는 좀 더 봐야할 거 같지만 어쨌든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건조하지만 당시에는 숲과 초원으로 덮였을 따듯한 곳에서, 인류의 첫 세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땅 위의 삶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후손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었다. 세대가 흘러가며 인류의 개체 수는 늘어나고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기 위하여 집단적인 이주를 시작하기도 했다.

대부분 실패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지 못하였지만, 10만 년 전에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데 성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7만 년 전에는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진출했고, 5만 년 전에는 인도네시아를 거쳐서 호주까지 그리고 4만 년 전에는 유럽으로 삶의 영역을 넓힌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인류의 이주 역사는 생물학적 화석과 DNA 외에도 벌써 예술적 감각을 갖춘 인류의 동굴벽화나 조각상 그리고 생활에 쓰였던 석기 등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인류의 이주가 새로운 지역에 뚜렷이 남긴 간접적 증거는, 그 지역에 번성했던 대형동물들이 인간의 이주와 맞물려 갑자기 멸종되어 버리는 일들이었다. 비단 한 두 개의 지역에서 나타난 사건이 아니라, 지구 전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1만 5천 년 전의 빙하기에 연결되어 있던 지금의 베링 해협을 건너서 북아메리카에 진출했고, 이전에 그 지역을 지배하던 대형동물들 47 속에서 34 속이 사라졌다. 북아메리카를 거쳐서 1만 년 전에 남아메리카에 인류가 이주한 시기에는, 대형동물들 60 속에서 50 속이 빠르게 멸종했다. 이보다 이른 시기인 5만 년 전에는 호주에서, 50㎏넘는 대형동물들 24종에서 23종이나 멸종되었다. 인간은 어느 동물보다 더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 이것을 인간의 파괴적 본성이라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을 벗어나 인간들끼리 모여 만든 사회라는 생태계에서 살면서 생겨난 사회적 속성이 더 위험스러워 보인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사냥을 더 잘하고 불을 다루며 예술을 표현하고 도구를 만들 정도로 똑똑했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먹이를 구하며 전적으로 자연에 의지해 살았다.

 

문명의 탄생

약 1만 2천 년 전에 흔히 초승달 지역이라고 일컬어지는 중동의 어느 지역에서 이전과 다른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먹고 남아서 집 근처에 버린 씨앗에서, 먹었던 열매의 식물이 자라며 손쉽게 열매를 구할 수 있던 경험을 우연히 겪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약간의 기대를 갖고서 일부러 씨앗을 여기저기 뿌려보고,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러 다니면서 지나쳐보았고 한편으로는 싹이 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어느 곳에 뿌린 열매는 기대보다 더 큰 결실을 주었을 것이고, 또 어떤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을 것이다. 전에 없었던 신기한 이 일을 이웃과 얘기도 하고, 누군가는 가설 검증을 위해 더 많은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거나 돌봐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경험들은 결국 새로운 지식이 되어, 열매를 구하러 멀리 헤매지 않아도 어떤 씨앗을 어디에 심고 어떻게 돌봐주는 것이 큰 결실을 맺게 되는지를 차차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구에는 인위적으로 재배한 먹거리가 처음 생산되기 시작했고, 어느 지역에서 성공한 농업은 주변으로 전파되기 쉬었으리라 짐작된다.

의도를 갖고 식물을 재배하여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업의 결과는 엄청났다. 단지 좀 더 쉽게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한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농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경우 같은 면적에서 50배의 생산량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인간들은 사냥감을 찾아 들로 산으로 쫓아다녔지만, 어느 날 사냥한 짐승을 바로 죽이지 않고 묶어두니 새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사육하기에 적합한 동물도 있었겠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에 사육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물을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으며, 또 건강하게 키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식량으로는 너무 작은 늑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키웠을 수도 있다. 야생 늑대새끼는 아이들과 잘 놀았을 수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 자라면서, 어느덧 새끼를 낳기까지 하여 자신의 가치를 인간들에게 보여주었을 수도 있다. 개와 양, 염소, 돼지, 소, 닭과 같은 야생의 동물들은 이렇게 인간의 영역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농업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목축 역시, 인간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게 하는 블루오션이었다. 인간은 농업과 목축에서 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한 지혜와 경험을 쌓아나갔으며, 그럴수록 삶은 더 여유로워졌고 인구는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과거에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채집하거나 사냥했던 자연 의존적인 삶에서, 농업과 목축이라는 방식으로 자연을 재배하는 존재로 변했다. 인간만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자연과의 관계, 자연에 대한 위상을 변화시킨 생물종이 되었던 시기가 1만 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

목축하는 동물에 맞추어 계절에 따라 이동해야만 하는 유목민의 삶도 있지만, 농업에 의존하는 농민은 정착해야 하기 때문에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공동으로 분배하여 늘 먹을 것을 쫓아 살아가던 야생의 존재에서, 저장 기술의 발달과 잉여 생산물의 소유가 야기한 불평등한 사회의 존재로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하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던 지역에서는 집단의 규모가 커져서 도시를 형성하기도 했다.

사회 인프라와 제도가 갖춰진 도시는 약 6천 년 전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처음 나타났다. 다른 지역에서도 도시가 생겨나면서 도시라는 사회적 형태는 인간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선봉이 되었고, 사람들은 도시가 잘 돌아가기 위하여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인구가 늘면서 사람 사이에 교류도 많아지고 새롭게 필요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래를 위한 셈법과 일상과 농업을 위한 달력 그리고 문자발명은 수메르인이 기원전 3,400 년경에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의 기억과 구전은 기록이 되어 거래와 의사소통에 객관적인 기준이 생겨났다.

우리는 조상들이 남긴 문자를 해독하면서 인류의 진화과정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대를 거듭하면서 지식은 보완과 발전을 거치면서 인간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자는 인간의 지적 자산을 그 지역의 소수에게만 한정시키지 않았고, 공간적으로 더 넓게 전파될 수 있었다. 또한 시간을 넘어서 전달될 수도 있었으므로 인간의 지성이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제 다른 동물들과 완연히 구별되었고, 사회라는 새로운 생태계는 자연이라는 이전의 생태계보다도 훨씬 중요해졌다.

현재에도 인류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2018년 발표한 유엔 해비태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60%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먹을 것과 주거지를 넘어, 인간이 가진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거대한 도시에 살게 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문명화된 세상은 인간의 생리적인 한계를 많이 극복하게 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나아진 것일까? 어찌 보면,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면에서 오래 전의 원시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지 삶의 공간이 자연이 아닌 사회로 옮아왔을 뿐, 생존방식에 있어서 현대인은 원시인과 비교하여 그리 나아보이지 않는다. 문명이 발달해 온 것처럼, 우리의 정신영역도 진화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 발달이 아니라, 집단지성을 통하여 더 나은 사회로 발달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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