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멋지고 경이로운 밤하늘을 보았을 것이다. 빛의 공해(광해)가 없었으니까. 아주 오래전에 목동들은 눈에 띠는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었고, 밤하늘은 별자리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이 채워졌다. 각 나라나 지역마다 다르게 이름과 이야기가 담긴 별자리는 수천 년 전에 바빌로니아 지역의 유목민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별자리는 기원전 3천년 즈음 바빌로니아 표석에도 나타나는데,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로 전해지면서 신화가 입혀졌다. 별자리를 구성하는 천체는 별만이 아니라 은하와 성단, 성운도 있다. 서양의 점성술에서 물병자리는 1월 20일에서 2월 18일 사이에 태어난 사람의 별자리이며, 별과 은하, 구상성단과 행성상 성운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들은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는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점성술은 별자리가 국가나 집단의 운명 혹은 개인의 속성과 운명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

하늘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별자리가 국가의 미래를 예견해주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대에 밤하늘을 관측하는 일은 중요했다. 밤하늘에 빛나는 것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며 천문관측 자료와 기술이 쌓이고 발달했다. 연금술에서 화학이 나왔듯, 점성술은 천문학으로 발달했다. 밤하늘을 자세히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니, 대부분의 별들과 다르게 위치와 밝기가 빨리 변하는 행성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행성들의 움직임을 계속 관측하고 기록해보니, 완전한 천상의 세계에 있는 행성의 운동이 원운동과 맞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행성들은 다른 천체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어느 시기에는 거꾸로 움직이는 역행운동을 하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약 100~170)는 완전한 천상 세계라는 믿음에 이러한 천체 관측 자료를 맞추기 위해 주전원들을 도입했다. 주전원이란 원운동 궤도 안에서 또 원운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Almagest ‘위대한 책’이라는 의미)』는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후 1,400년 동안 지구중심설을 바탕으로 쓴 가장 영향력 있는 천문학 서적이었다. 1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소개하고 있는데, 실제 관측 자료와 맞지 않으면 주전원을 더 만들어 맞추려다 보니 행성 운동을 나타내는 기하학적 구조는 점점 복잡해졌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행성들의 복잡한 운동궤도를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지동설로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훨씬 단순한 원리로 관측 값에 맞출 수 있었다. 1510년에 쓴 40쪽의 필사본 ‘짧은 해설서’는 사실상 지동설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단, 지동설을 공식적으로 밝힌 책은 33년 후 출간되었다).

① 모든 천구들은 공통되는 하나의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②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지구는 무게가 향하는 중심, 달의 천구의 중심일 뿐이다.

③ 모든 천구들은 태양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의 중심은 태양의 근처에 있다.

④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대천구(항성들의 천구)의 높이와 비교하면 매우 작아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이다.

⑤ 대천구의 겉보기 운동은 실제 운동이 아니라 지구의 운동에 의해 생긴 결과이다. 지구는 고정된 극을 회전축으로 삼아 자전하며, 하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항성들의 대천구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⑥ 태양의 겉보기 운동은 실제 태양의 운동이 아니다. 지구와 지구의 궤도 껍질의 운동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즉, 지구는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구는 적어도 두 가지 운동을 하고 있다.

⑦ 행성의 역행 운동은 실제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의 운동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의 운동만으로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불규칙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

De revolutionibus, 1543, title page

실제로 2019년에는 인공지능에게 화성과 태양 관측 자료를 주고 모형을 유추하라고 했더니, 태양을 중심으로 화성이 움직이는 코페르니쿠스 모형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자료를 신뢰하면 상상의 믿음을 넘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지구 중심의 종교관을 뒤집는 것은 어려웠다. 코페르니쿠스가 사망한 해인 1543년에 6권으로 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이 드디어 출판되었으나, ‘계산상의 편의를 위한 추상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문을 추가되어야 하며, 초판 400부가 다 팔리지도 못했다. 개신교 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 가장 먼저 반발했고, 로마 가톨릭은 1616년 금서로 지정했다가 1758년에 풀었다. 뉴턴이 1687년에 『프린키피아』에서 역학체계와 만유인력으로 완벽하게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설명한 지 80년이 지난 후였다.

 

완벽하지 않은 천상의 세계

튀코 브라헤(1546~1601)는 아주 정확하고 뛰어나게 관측을 했지만,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 주위를 태양과 달이 돌고, 다른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다. 당대 최고 수준의 수학 역량을 갖춘 케플러(1571~1630)는 브라헤가 죽자 그의 관측자료를 받았으며, 1602년에 두 번째 법칙으로 알려진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3년 후인 1605년 첫 번째 법칙인 ‘타원 궤도의 법칙’을 발견했다. 케플러도 하늘의 완전한 원운동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행성의 궤도를 원으로 두고, 태양을 원의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두고 연구했지만 관측자료와 맞지 않았고, 결국 타원 궤도를 적용하자 관측자료와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다. 이후 10년 이상을 힘들게 계산한 후 ‘조화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세 번째 법칙까지 찾아낸다. 행성운동에 대한 케플러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이는 천체 관측자료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아주 단순한 자연법칙으로 자리잡는다.

타원 궤도의 법칙(1605년): 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리면서 공전한다.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가상적인 선분이 같은 시간 동안 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항상 같다.(1602년)

조화의 법칙: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궤도의 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1619년)

티코 브라헤의 방대하고도 정확한 관측자료와 케플러의 뛰어난 수학적 역량, 오랜 노력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완벽한 천상계의 상상적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행성이 타원을 따라 운동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천상의 세계는 약간 일그러지게 되었고, 천상계는 완전하지 않은 모습이 처음으로 관측과 계산을 통하여 나타난 것이다.

 

케플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갈릴레오(1564~1642)는 관성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지구가 움직인다면 왜 허공의 물체가 뒤로 물러나지 않는가 의문을 제기하며, 지구가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지구에 타고 있는 모든 것들 역시 땅에 붙어 있든 허공에 있든 관성에 의하여 똑같이 움직여서 정지한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또한 갈릴레오는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견되었다는 말을 듣고 직접 제작하여 하늘을 관찰하면서 천상의 세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달의 지형은 매끈하지 않고 지구처럼 산과 골짜기가 있었고, 목성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4개의 위성들을 발견했다.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또한 태양의 흑점을 발견했으며, 금성의 위상 변화도 관찰하며 천상의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객관적 증거와 지동설에 대한 믿음을 단단하게 했다. 이제 천상의 세계는 오랫동안 믿었고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지상의 세계와 약간 비슷해졌고, 후에 뉴턴은 분리되었던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통일하게 된다.

 

물질의 근원을 실험하다

연금술은 비록 금과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많은 실험이 이루어지며 자료들이 쌓이고 기술과 지식이 발전하면서 화학(chemistry)을 낳게 된다. 화학은 물질의 속성과 변화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갔고, 새로운 물질들을 합성하거나 더 기본적인 물질로 분리하여 새로운 원소들을 계속 발견하며 연금술을 대체해갔다. 공기와 흙은 여러 물질이 섞인 혼합물(mixture)이고, 물을 전기분해 하여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고 다시 합성하여 물을 만들어냄으로써 물이 기본원소가 아니라 화합물(compound)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불은 물질이 아니라 물질과 산소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화학적 현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에 4원소설과 연금술은 사라졌다. 마녀나 요정의 신비한 물약이나 생명의 묘약, 현자의 돌에 대한 환상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보일(1627~1691)은 4원소설에 나오는 원소 중 하나인 공기가 혼합물이라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고, 리트머스 이끼에서 추출한 용액으로 산과 염기를 정량적으로 잴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도 발명하는 등 근대 화학의 기초를 세웠다. 보일은 실험을 통한 검증과 실험에 바탕을 둔 지식을 중시하고, 근대 화학의 개척자로서 만물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길도 열었으며, 경험론 철학자로 유명한 존 로크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보일의 법칙’은 일정한 온도의 닫힌(?) 세계에서 기체의 부피(V, volume)와 압력(P pressure)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압력을 가하면 기체의 부피가 줄어든다. 식으로 나타내면 P∝1/V 혹은 상수 k를 이용하여 PV=k로 나타낼 수 있다. 보일의 법칙이 별것 아닌 당연한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공기가 들어 있는 풍선이나 피스톤을 누르면 부피가 줄어드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일이 정성적인 추측을 넘어 압력과 부피가 반비례한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수식으로 표현했으며, 엄밀하고 객관적인 실험을 통하여 검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학적인 방법이 자연의 비밀과 진실에 다가서게 한다.

Title page of The Sceptical Chymist (1661)

보일의 법칙은 기원전 250년경 아르키메데스의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물체를 유체에 넣었을 때, 물체가 떠오르는 부력의 크기는 물체가 밀어낸 유체의 중력과 같다), 17세기 초 케플러의 ‘행성운동의 법칙’과 더불어 인간이 발견한 자연법칙 중에서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하다. 당시 인간에게 중요한 전진이므로 조금 더 살펴보자.

다음 그림은 보일의 유명한 ‘J자 관 실험’이다. 공기의 부피는 유리관 왼쪽에서 측정할 수 있고, 공기의 압력은 오른쪽의 수은 높이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뚫려 있는 오른쪽 관으로 수은을 조금씩 넣어주면, 공기가 통할 때까지는 양쪽 관의 수은 높이가 같다가, 공기가 통하지 않게 된 상태에서 수은을 더 넣으면 왼쪽 관의 공기는 부피가 줄어들고 압력이 커진다. 오른쪽 관으로 넣어주는 수은의 양을 조절하면서 왼쪽에 있는 공기에 대해 압력과 부피를 측정했더니 ‘곱한 값’이 늘 일정했다. 보일은 여러 기체에 대해서 실험을 반복하면서 1662년에 보일의 법칙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Boyle’s Experiment Using a J-Shaped Tube to Deter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Gas Pressure and Volume. (a) Initially the gas is at a pressure of 1 atm = 760 mmHg (the mercury is at the same height in both the arm containing the sample and the arm open to the atmosphere); its volume is V. (b) If enough mercury is added to the right side to give a difference in height of 760 mmHg between the two arms, the pressure of the gas is 760 mmHg (atmospheric pressure) + 760 mmHg = 1520 mmHg and the volume is V/2. (c) If an additional 760 mmHg is added to the column on the right, the total pressure on the gas increases to 2280 mmHg, and the volume of the gas decreases to V/3.

왼쪽 관의 공기 압력은 양쪽 관의 수은기둥 높이 차이에 비례하므로 보일의 법칙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보일의 J자 관 실험은 다른 중요한 것을 밝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은 진공 없이 꽉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이 맞다면 압축될 여지가 없으므로 공기의 부피가 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보일은 물질들이 입자로 구성되어 있고, 입자들 사이는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며, 부피가 변하는 것을 공기 입자들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물질의 입자설’을 주장했다. 진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오랫동안 전해져오며 우상화되어 있었다. 보일은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혹은 “자연에 진공이 없다”라는 전통적 믿음을 구체적이고 정확한 실험으로 반박했던 것이다.

이것은 1643년에 진공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토리첼리의 실험에도 영향을 받았다. 토리첼리는 공기방울을 제거하고 수은을 채운 유리관을 뒤집는 실험을 했는데, 수은이 내려오며 유리관에 공간이 생겼다. 이로써 진공이 존재할 수 있으며, 수은의 높이는 대기압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대기가 수조에 있는 수은을 누르는 압력과 뒤집어진 유리관에 있는 수은이 중력에 의하여 수조의 수은을 누르는 압력이 다르다면, 수은은 같아질 때까지 움직일 것이다. 대기압이 높다면 수은 기둥의 높이도 더 올라가고, 대기압이 약하다면 유리관의 수은이 내려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보이지 않는 공기들이 층층이 쌓여서 생긴 무형의 대기압을 눈에 보이는 수은의 높이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압계(barometer)의 원리이다.

Torricelli Invented the mercury barometer, recorded in the books of Camille Flammarion (1923)

기압계를 뜻하는 영어단어 바로미터는 일상적인 관용어구로도 쓰인다. 가령 “횡단보도 신호를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의 공중도덕심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처럼. 사족을 덧붙이자면, 유리관의 수은 기둥 위에 생긴 토리첼리의 진공은 엄격한 의미에서 진공은 아니고 수은 증기가 섞여 있다. 잘 증발하지 않은 액체를 사용하여 실험한다면 좀 더 진공에 가까운 상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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