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에 공통된 에너지 화폐

우리가 상업적으로 거래할 때 돈이 오고 가는 것처럼,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변화에 공통적으로 거래되는 분자가 있다. 이 분자는 세포의 운동, 세포 분열, 근육의 수축, 신경 신호의 전달, 세포막을 통한 물질의 운반과 이동, 생체분자 합성, 유전자 발현 등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물질대사가 가능 하도록 만든다. 이 분자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며, 생명체의 거의 모든 세포에 공통으로 존재함으로써 바야흐로 지구 생명체의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생체분자다.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화학적 반응에서 거래되는 이 분자에 ‘분자 단위의 에너지 화폐“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자연스럽다. 또한 이 분자를 생성하는 미토콘드리아 역시 ’생체 에너지의 생산 공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수긍이 간다.

이 분자는 탄수화물(‘당류’라고도 부른다)의 가장 간단한 형태인 단당류에 속하는 포도당(C6H12O6 ‘글루코스’라고도 부른다)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합성되어 다양한 물질대사에 사용된다. 따라서 포도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분자를 생성하기 위한 생물의 에너지 재료이며, 다당류인 녹말과 글리코겐 혹은 지방의 형태로 저장되어 비축함으로써 생명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어느 생명체든지 늘 먹을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굶주리는 일은 어느 생물 종에 있어서나 흔하게 일어났으며 포도당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비축된 분자가 모자라는 일에 대비해야 했다. 다당류 외에 지방은 지방산으로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생체 에너지 생산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로 들어가서 이 분자를 생성할 수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굶주리거나 단식하는 경우에, 우리 몸에서 지방이 빠지고 단백질의 주성분인 근육이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지방과 단백질 역시 우리 몸에서 수행해야 할 중요한 물질대사들이 있기 때문에, 물질대사의 재료로써 그 역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면 생명체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포도당은 생명체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재료이며, 등산과 같이 장시간 운동을 하는 경우에 당류 식품을 휴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뇌의 신경세포는 포도당만을 재료로 하여 이 분자를 만들기 때문에, 포도당이 부족하면 신경신호 전달이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뇌세포가 사멸할 수 있다.

잠수해 있거나 어떤 이유로 호흡을 하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고, 다른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호흡이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흡은 공기 중의 산소가 이 분자를 만들어 내는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에까지 전달되는 과정이다. 몸 밖에 있던 공기를 몸 안으로 들여오고 혈액 속으로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과정은 호흡기관(공기가 드나드는 기도,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폐,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과 중추신경계)에서 이루어진다. 폐의 모세혈관을 통하여 혈액으로 흡수된 산소는 혈관계를 따라서 온몸 구석구석 이동하여 몸의 모든 세포에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세포호흡이 일어난다. 세포호흡은 포도당(C6H12O6)이 산소(O2)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CO2)와 물(H2O)로 분해되는 과정이고, 하나의 포도당 분자가 38개의 이 분자를 생성해낸다. 호흡을 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상식을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분자를 생산하는 세포호흡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명활동이 멈추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쯤에서 이 분자의 이름을 드러내기로 하자. 우리 몸의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이 분자의 이름은 ATP(아데노신 삼인산 adenosine triphosphate)다. 세포호흡은 포도당이 산소를 결합시켜서,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하면서 ATP를 얻는 과정이다. 호흡 과정은 이산화탄소와 물을 재료로 빛 에너지를 받아서 포도당을 합성하고 산소를 내어놓는 광합성 과정을 거꾸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기물에서 유기물인 포도당을 합성하는 광합성에서 사용되는 에너지가 빛 에너지였다면, 포도당을 이산화탄소와 물이라는 무기물로 분해하는 세포호흡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는 ATP라는 분자가 지니는 화학적 에너지다. 1 몰(약 6.022 × 1023 개)의 ATP는 ADP(아데노신 이인산 adenosine diphosphate)으로 변환되면서 에너지를 약 7 kcal의 에너지를 낼 수 있어서, 생체분자의 다양한 화학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ATP는 가수분해되면서 적정한 규모의 에너지를 내고 충전하여 쉽게 재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생명체의 화학반응에서 효율적인 에너지 화폐 역할을 할 수 있다. The cycles of synthesis and degradation of ATP; 2 and 1 represent input and output of energy, respectively.

인간의 몸은 약 100조(1014) 개의 세포가 있고, 세포에 따라서 다르지만 하나의 세포에는 약 1천(103)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으며 하나의 미토콘드리아에는 약 백만(106) 개의 ATP가 있다고 한다. 즉, 우리 몸에 있는 ATP의 개수는 약 1023(=1014× 103× 106) 개 정도다. 개수를 나타내는 국제단위인 1 몰이 약 6 × 1023 개이므로, 우리 몸에는 1/6 몰 정도의 ATP가 있는 것이다. 물론 ATP는 다양한 물질대사에서 사용되고 다시 호흡이라는 물질대사로 생산되며 개수를 유지하고 있다. 1 몰의 ATP가 약 7 kcal의 에너지를 낼 수 있으므로, 우리 몸 안에 있는 ATP를 그저 소진한다면 7 kcal × 1/6 ~ 1 kcal 정도의 열량만 낼 것이다. 그러나 ATP를 사용하는 만큼 채워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가 하루에 약 2천 kcal라고 한다면, 하루 24시간은 1,440분(=24 시간 × 60 분/시간)이므로, 1분에 1회 정도만 ATP를 생산하면 1,440 kcal가 되어서 부족하다. 또한 ATP를 생성하기 위해서도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단순하게 ATP가 ADP로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생체 에너지만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수치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인간은 1분에 약 3회 정도 ATP를 생산해낸다고 하는 것을 얼추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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