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과 물질의 근원

아마도 과학의 역사에서 연금술(alchemy)처럼 돈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연구는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4원소설을 지지한 이래로 2천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연금술을 믿으며 값비싼 금이나 무병장수를 가능하게 하는 ‘현자의 돌’(‘철학자의 돌’, ‘마법사의 돌’로 불리기도 한다)을 만들기 위해 혹은 찾기 위해 많은 실험과 힘든 탐험을 해왔다. 세상의 모든 물질의 근원이 물, 공기, 흙, 불의 4가지 원소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4원소설에 따르면, 네 가지 원소들의 배합에 따라서 다양한 물질이 나온다. 모든 것들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고 단지 구성 비율만 다르다고 믿었기 때문에, 금이나 현자의 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단지 금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조합된 비율을 찾고 그 비율의 조합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하면 되는 일이었으며, 부유해지는 것을 넘어서 명예와 권력까지도 움켜쥐고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크게 이득이 되는 것이었으니 연금술사들의 노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아주 강력한 동기를 갖고 많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연구를 한 연금술은 결국 물질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물질의 구성단위를 다루는 화학(chemistry)라는 과학의 영역으로 대체된다.

The four classical elements of Empedocles and Aristotle illustrated with a burning log. The log releases all four elements as it is destroyed.

4원소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물질의 근원에 대한 답으로 간주되었을까? 달리 말하자면 인간은 2천년 동안이나 잘못된 이론을 고치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4원소설은 결국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2천년 동안이나 유럽의 스승으로 여겨질 정도로 정치학, 윤리학,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수사학, 정치, 경제, 물리학,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심리학 등 당대 대부분의 학문에 대해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관점을 후대의 사람들은 잘 벗어나지 못했으나, 코페르니쿠스로 시작되는 과학혁명(지동설을 피력한 1543년에서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간된 1687년의 약 150년의 기간에 일어났던 과학의 정립)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큰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달리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는 같은 운동 법칙과 같은 운동 원인으로 작동되는 하나의 통일된 세계라는 것을 뉴턴은 자신의 역학체계로 증명해냈다. 세상의 변화를 기술할 수 있는 미분이라는 수학적 도구를 발명하여 지상의 운동과 천상의 운동을 계산했으며, 밀물과 썰물, 달과 행성들의 운동(케플러의 행성운동의 법칙을 뉴턴역학에서 유도할 수 있다), 지표면 근처에서 물체의 자유낙하와 포물선 운동 등 천상과 지상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심지어 망원경으로 찾아내어 태양계 마지막 행성으로 여겨졌던 천왕성의 운동이 관측 값과 뉴턴역학에서 계산한 이론값이 서로 맞지 않았던 의아함은, 뉴턴역학을 기반으로 천왕성의 관측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 가상으로 도입한 천왕성 너머의 미지의 행성을 계산으로 추정한 곳에서 발견될 정도로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먼저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상한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물론 이 행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이다. 해왕성은 이론으로 먼저 예측하고 관측이 뒤따랐던 최초의 천체로 기록된다.

연금술과 4원소설을 벗어나는 직접적인 계기는 화학에서 일어났는데, 먼저 4원소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6백 년 전인 기원전 6세기에 탈레스라는 걸출한 철학자는 최초의 수학적 정리라고 여겨지는 ‘탈레스의 정리’(“반원의 원주각은 직각이다“)를 증명했고 전기와 자기를 연구하고 일식을 예측하여 맞출 정도로 세상을 인간의 영역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최초의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생각된다. 탈레스는 혼자만 특출 난 역량을 보인 것이 아니라, 밀레토스 학파를 만들어 자연과 이치를 인간 너머의 초월자에게만 의탁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으로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전통을 그리스에 남겼고 이 전통은 유럽의 발전과 과학의 발달로 이어진다.

위대한 탈레스는 만물은 궁극적으로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주장은 우리에게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로 알려진다. 탈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며 ‘습함’이라는 규정적인 성질을 가진 물이 건조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물질을 이루기 위해서, 물질의 근원은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라 구체적일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무한자(apeiron)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의 친구인 아낙시메네스(B.C. 585~525)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에 대한 입장을 이해했으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물질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느 곳에서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좀 더 실체적인 공기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크세노파네스(B.C. 570~475)는 “모든 것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며, 흙을 만물의 근원처럼 여겼다. 헤라클레이토스(B.C. 535~475)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중시하면서 불을 근원 물질로 보았다. 만물은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라는 주장은 후대에 영향을 끼쳤고 현대의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 4 개 물질이 모두 만물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4원소설을 최초로 주장한 이는 엠페도클레스(B.C. 494~434)다. 네 개의 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를 중요시했으며, 사랑으로 결합하고 미움으로 분리된다는 주장으로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 이 4원소설은 플라톤(B.C. 428 ~ 348)을 거쳐서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더 발전되며, 물질에 대한 유럽의 관념을 오랫동안 주도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과학혁명을 완성한 천재 석학 뉴턴조차도 연금술에 흠뻑 빠져서 오랫동안 상당한 연구를 할 정도로 연금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현대의 우리로써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던 것 같다.

납을 금으로 만들어준다는 ‘현자의 돌’을 제조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 뉴턴의 연금술 필사본

이렇게 신망 받았던 연금술은 뉴턴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활동한 보일(1627~1691)이 4원소 중의 하나인 공기에 대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를 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근대적 화학자로 인정되는 보일은 실험을 통하여 공기가 순수한 물질이 아니라 두 종류 이상의 기체가 혼합된 혼합물이라고 근거 있게 주장할 수 있었으며, 우리에게 보일의 법칙으로 알려진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정한 진공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또한 4원소설의 관점과 달리 물질이 아주 작은 입자로 구성되었다는 데모크리토스(대략 B.C. 460~370)의 원자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일의 입자설로 부활시켰다. 이렇게 보일에 의하여 객관적이고 정교하게 실험하여 얻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과학적 관점은 보일의 앞 세대인 베이컨(1561~1626)의 경험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17세기 중반에 보일이 문을 연 근대 화학은 18세기말 라부아지에의 화학혁명으로 성장하면서, 4원소 중의 하나인 물을 산소와 수소로 전기분해하고 다시 두 기체로 물을 합성해내었다. 또한 우리가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듯이 흙은 만물의 근원이 아니라 여러 물질의 혼합물이며, 심지어 불은 물질이 아니라 물질이 산소와 격렬하게 반응하는 ‘연소’라는 현상임이 밝혀지면서 4원소의 어느 하나도 물질의 근원에 있을 수 없게 된다. 또한 물질의 근원으로 생각되는 원소들이 화학혁명의 시기에 이미 30여 종으로 늘어났고, 새로운 원소들이 계속 발견되면서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서 연유한 연금술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게 됐다.

세상에 온갖 물질들이 있을 수 있던 것은 4가지 원소들의 비율에 따라서가 아니라,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element)들이 다양하고 원자(atom)가 결합한 분자(molecule)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단위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원소인 탄소만으로도 결합구조에 따라서 다이아몬드와 흑연, 나노튜브, 플러렌 등의 물질이 나올 수 있고, 탄소와 수소로 구성된 탄화수소 분자들은 석유나 천연가스, 벤젠 등 수십 종 이상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원소들로 세상의 온갖 물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Previous article생명체에 공통된 에너지 화폐
Next article과학 협회의 출현과 과학의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