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협회의 출현과 과학의 발달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던 세계관(지구 중심설, 천동설)은 코페르니쿠스(1473~ 1543)의 태양 중심설(혹은 지동설)과 케플러의 행성운동의 법칙, 뉴턴의 운동법칙(자연 원리)과 만유인력의 법칙(운동 원인)으로 폐기되었다. 중심은 하나 밖에 없는 것으로써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곳 그리고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오랫동안 믿어왔다. 이 믿음은 과학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 인간이 우주에 대해서 더 소박한 관점을 가져야 하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뉴턴 역학은 단지 자연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역학체계를 넘어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관념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주었다. 이렇게 객관적인 관찰과 합리적인 이론으로 과학이 정립되던 과학혁명의 시기에는 과학을 실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고립되어 개인적으로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협회(society)를 결성하여 서로의 연구를 교환하고 토론하면서 과학은 개인의 연구만이 아니라 집단지성으로써 자리 잡게 된다. 서로의 연구를 들여다보고 검증하면서 객관성을 확보하고, 더 발전된 결과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과학의 발달에서 중요한 변화이다. 각자의 연구를 개인적으로 알리는 것 이상으로 협회에서 논문 형식으로 발표하여 회원(member)들이 모두 접근할 수 있었고 발표한 논문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하여 과학 전문 학술 잡지도 출현하게 되면서 그 시기의 과학이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 협회에 소속된 회원은 과학의 전문가로써 과학자(scientist)라는 전문 직업으로 새롭게 인식되었으며, 1601년에 조직된 최초의 과학 단체인 린체이 아카데미는 체시 공작의 후원을 받는 32명의 과학자들로 구성되었다. 갈릴레오도 이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후원을 받는 과학자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피렌체에 페르디난도 대공의 후원을 받는 실험 아카데미가 출현하기도 하는 등 이탈리아에서 출현한 과학 단체들은 귀족의 후원을 받아서 강력한 후원자의 사후에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웠다.

영국에서는 국가적 관점에서 1660년에 영국 왕립 과학 협회(왕립 협회 Royal Society)가 설립되어 회원 수와 기능을 확대하면서 오늘날까지 왕성한 활동과 지적 성취를 자랑하고 있다. 왕립학회의 회원 자격은 특별한 조건이 없었으며 일정한 액수의 회비를 내고 자연과학에 관심이 있으면 누구라도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창립 당시에 100여 명이던 회원은 10년 뒤 200명으로 늘었고 1800년에는 500명으로 증가하였다. 회원의 자격만이 아니라 연구 주제에 대해서도 별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왕립협회에서 발표되는 과학연구들은 개인적이고 산만한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장 유명한 대중과학 강연회 중의 하나인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은 1825년에 시작되었는데 과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과학의 원리와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제공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왕립학회는 사실상 영국의 과학 아카데미의 역할을 하며, 논문을 발표하고 검증하면서 최초의 과학협회로써 인정받는다.

최초의 과학협회로 인정되는 영국 왕립 과학 협회(Royal Society) 건물의 최근 모습

1666년에 세워진 프랑스의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영국과 달리 회원들이 모두 직업적인 과학자였으며 회원도 16명으로 제한하였으나 국적의 제한을 두지 않아서 회원은 과학자로써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호이겐스나 덴마크의 올레 뢰머와 같은 이국인도 회원이었다. 회원인 왕립 과학 아카데미 과학자들은 왕으로부터 급여를 받아서 연구하였으며 왕이 위탁한 과학적 문제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프랑스는 물리량을 표준화 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졌었는데, 국제단위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도량형 총회는 파리에서 개최된다. 프랑스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남아프리카에 탐사대를 보내서 길이의 표준인 1 m를 정의하였으며, 1875년 파리에서 17개 나라에 의한 최초의 도량형 조약인 미터 협약을 열기도 했다. 기본적인 물리량의 표준을 규정하는 ‘국제 단위계’를 ‘SI 단위계’라고도 하는데 SI는 프랑스어 Système international(영어로는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를 줄여서 쓴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의 왕립 아카데미는 훨씬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와 정책적인 연구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영국의 왕립협회의 자유로우면서 산만한 분위기와 대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적 아카데미는 한편으로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아카데미 대표에 따라서 연구의 방향이 한정되는 취약성도 갖고 있었으며, 연구 주제와 방향에 대해서도 지속성을 갖기 어려웠다. 영국과 프랑스의 과학자 집단의 특성은 서로 비교가 될 정도로 많이 달랐으나 각자의 방식으로 인류의 지적 성취를 이루어갔고, 다른 나라들에게 영향을 주며 과학을 실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발전이 일어났다.

현대의 과학자들 역시 학교만이 아니라 학회나 협회라는 과학자 단체에 소속을 두고 연구를 발표하며 집단지성의 검증을 받는다. 회원들은 다른 회원의 논문을 심사하고 보완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더 좋은 연구결과를 내도록 돕는다. 가끔씩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지 않고 언론으로 홍보하는 연구도 있지만, 대개는 전문가 단체에서 검증을 통과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사이비 과학 수준일 정도로 엉터리인 주장이 언론에 등장하기도 하며, 이름만 번듯한 국제 과학협회에서 발표하고 현실에 이용하는 엉터리 과학자도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다양하고 많은 과학 협회와 단체가 있기 때문에 어떤 협회의 회원은 큰 영예로 여겨지기도 하고,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은 과학자로써 가장 큰 자극과 명예가 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넓히는 현대의 과학 활동은 협회, 학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스위스 특허청의 직원이었던 아인슈타인의 놀라운 업적과 은둔자와 같은 패럴만이 100 년 만에 풀어낸 푸앵카레 추측과 같은 성취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학회를 통하여 검증되고 발표된 논문들을 바탕으로 일궈낸 것이며 전문가 집단에서 검증 받아서 인정받게 된다.

Previous article연금술과 물질의 근원
Next article걷는 속도와 12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