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살아가는 생태계는 문명사회지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 삶의 생태계는 자연의 영향을 더 받았다. 자연이 내어준 곡식과 과일 그리고 사냥감들을 잡아서 살아가고 후손을 남길 수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돌림병이나 거대한 태풍이나 홍수, 지진 땅 위의 모든 것을 메마르게 하는 극심한 가뭄, 무시무시한 번개와 화산 폭발 등 자연의 막강한 위력에 따라서 생존이 결정되기도 했다. 빛의 공해를 피하기 힘든 현대와 다르게 우리 조상들이 바라본 맑은 밤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하게 피어났고, 누군가는 신비로움과 함께 경외감에 빠졌을 것이다. 태양이 뜨면서 세상은 밝아지고 만물은 기지개를 켜며 생생한 색깔로 뒤덮인 세상은 활력이 넘친다. 태양이 서쪽 하늘로 모습을 숨기면 점차 어둠이 밀려오며 세상은 조용하면서도 평화롭고 밤하늘은 조화롭게 보인다. 자연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했지만 복잡한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복잡하면서도 조화롭게 보이는 자연,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보이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인간 집단에서 초월자는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있어서 세상이 조화롭게 운영될 수 있으며, 때때로 인간 너머의 존재의 뜻에 따라서 가뭄과 홍수, 지진,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어느 지역에서나 자연스럽게 집단에 자리 잡게 된다.
약 1만 년 전에 비옥한 초승달 지역(나일강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지역으로 이 지역은 인류의 첫 문명 발상지이기도 하다)에서 인간이 농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의 상태에 따라서 수확량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더 친밀해져야 했다. 비록 농업으로 인하여 동일한 면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인구가 몇십 배 늘어나면서 인간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동굴에서 나와서 정착하며 더 나은 주거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집단의 빈곤과 풍요는 그 지역의 자연 변화에 따라서 달라졌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이 드물게 일어나는 자연 현상 외에도, 싹이 자라날 때 가뭄이 들거나 한창 곡식이 익어갈 때 장마가 길어지면 그 집단은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인간 생물 종에 있어서 최초의 종교는 어느 지역에서나 다신교의 형태로 나타났다. 밤과 낮을 바꾸고 생명체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하루를 지배하는 태양은 다신교에서도 으뜸의 초월적 존재를 차지했으며, 대지의 신과 바다의 신과 같이 거대한 영역을 다스리는 신 외에도 산, 비, 나무, 바위, 호랑이와 같은 자연물과 조상신 그리고 다산과 풍요, 아름다움, 정의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을 주관하는 신들도 있었다. 여러 신들은 인간의 삶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기댈 수 있는 위안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무시무시한 자연의 위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보다는, 자연을 지배하는 신과 소통함으로써 자연의 위험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랬으며 믿었다. 신은 자연과 인간을 잇는 매개자 역할을 하였고, 신과 소통한다고 여겨지는 제사장은 집단의 운명에 관여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집단의 규모가 크지 않은 사회에서 신과 소통하는 메신저가 집단을 이끄는 권력도 같이 갖는 제정일치의 사회였다. 농업 기술과 저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 집단의 규모가 계속 커졌다. 몇만 명 수준의 도시도 나타났고 지역을 아우르는 민족의 개념도 나타났으며, 인간 사회의 권력이 지배자인 왕과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으로 분리되었다. 왕은 자기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제사장과 긴밀한 관계와 권력을 나누었고, 종교적 예식과 사회적 법규를 통하여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그것은 지배자나 그 사회를 신이 안 좋게 여긴다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므로, 해괴한 일이나 자연재해는 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도전을 신이 허락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집단마다 지역마다 종교는 조금씩 달랐다. 어느 집단의 배후에는 그 집단의 신들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집단과의 전쟁은 서로 다른 신들의 집합이 맞붙은 전쟁이기도 했다. 내 집단의 신을 높이고 부정한 신을 몰아내기 위하여 인간은 얼마든지 잔인해졌고, 신의 뜻이라는 최상의 전제를 팔아서 인간의 잘못들을 정당화하고 보이지 않는 신의 뜻을 맘대로 해석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집단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신들의 경쟁력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자신들이 믿는 신들이 다른 집단보다 더 위대해야만 생존할 수 있고 상대의 것을 거리낌 없이 취할 수 있었다. 여러 신이 나누어서 하던 일이 이제 더 위대해진 소수의 신으로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인간의 상상 너머 미지의의 것들까지도 다 처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이 나타났다. 모든 것을 관장하고 모든 것을 알며 모든 것을 창조한 절대적 존재인 유일신이 나타난 것이다. 유일신을 가진 집단의 정당성과 믿음은 다른 집단의 종교와 헌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장 큰 경쟁력을 갖춘 신이 등장함으로써 다른 모든 신들은 우상으로 전락됐다.
신이 강력한 곳에서 인간의 이성은 제한되게 연명하게 된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이 창조한 세상 그리고 인간이 다 헤아리지 못하는 권능으로 다스리는 자연에 대해서 감히 인간이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은 오히려 불경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기 때문에, 인간은 감히 신의 영역을 건드리지 말고 신이 지시하고 바라는 것을 더 잘 파악하여 쫓아가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신이 자연만이 아니라 사회로 영역을 넓히고 권한과 위상이 강해졌지만,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토스에서는 인간의 영역에서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나서 학파를 이루고 과학의 씨앗을 남겼다. 이천 육백 년 전부터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뿌렸던 이성의 씨앗은 아랍을 거쳐서 중세의 유럽을 깨우고 전세계로 퍼지면서 현대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과학과 수학의 합리적 체계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최상위 전제들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 지식과 정리들이 도출되며 기술과 인간 사회에 영향을 끼쳐왔다. 인간의 이성 영역인 과학과 수학이 종교와 비슷한 연역적 구조를 기초로 하면서도 다른 것은, 가장 밑바탕이 되는 전제에 대하여도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검증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공리 중에서 평행선의 공리를 허물면서 기하학이 평면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뉴턴의 역학 체계의 기초인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회의하면서 탄생하는 상대성 이론에 의하여 우주가 비유클리드 공간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옳다고 여겼던 전제들을 수정하거나 확장하면서 인간의 영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고 풍성해졌다. 현대의 과학이 마주하고 있는 경계에서는 과거에 철학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질문들에까지 답해나가고 있으며, 절대자 없이도 우주의 탄생과 현재와 같은 세상으로의 진화를 꽤 근거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과학을 통하여 매개자 없이 자연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그러나 현대와 같이 발달된 문명에서도 인간의 한계와 절망, 희망과 갈등은 여전하고 아직 인간은 그 영역을 잘 개간하지 못했다. 개간하지 못한 영역에서 인간은 종교를 통하여 위안을 얻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견뎌낼 수 있으며, 편협하지 않은 종교에서는 사회의 갈등을 줄이며 인간 사회가 자성하며 성장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에서도 유사 과학이 있듯이 종교에서도 같은 신을 믿는 다른 해석들과 다른 선택들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과학이든 종교든 출발이 되는 전제를 잘 보아야 할 것이며, 해석과 적용에서 편향되지 않은지를 성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며 당신의 삶을 더 멋지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