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기원

지금까지의 여정을 경험 삼아서 개별적인 현상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계속 했던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오랫동안 천지창조만큼이나 다양한 신화들을 만들고 지역에 따른 문화와 가치에 영향을 주었던 천지창조를 보다 객관적으로 알아보자.

 

누가 세상을 만들었나?

사람들이 오랫동안 궁금해오던 궁극적인 질문 중의 하나,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혹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세상이 되었을까?”에 대해서 과학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구에는 지역 별로, 종교에 따라 여러 창조신화들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해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온갖 현상들이 있으며, 지상과 달리 천상의 세계는 신비롭고도 조화로웠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지금처럼 되었을까?’라는 의문은 우주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만물의 탄생과 변화를 포함하는 광대한 것이죠. 어쩌면 가장 커다란 질문이고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며, 인간의 정체성과 세계관 같이 현실세계 이상의 정신적인 질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대과학은 현재의 모습만이 아니라 꽤 오래 전의 과거 모습과 우주의 적지 않은 영역을 관측할 수 있고, 눈으로 다가설 수 있는 영역보다 훨씬 적은 영역과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자연의 영역은 지난 100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고, 이렇게 많은 자연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성취해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죠. 현대과학의 시선으로 인간이 늘 지니고 있던 가장 큰 질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나 신념, 개인의 성향 혹은 지구의 모든 것들과 무관하게 우주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지구인의 시선이 아니라 우주 보편적인 존재의 관점으로 봅시다. 앞으로 나오는 우주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론에 따라 숫자와 내용이 약간 다를 정도로, 아직 인간의 현대과학의 수준은 보완할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언급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러나 불완전함은 자연이 그러하듯이, 변화 혹은 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어요.

현대과학은 130억 광년(10^26 m) 떨어진 은하들의 모습과 원자(10^-10 m)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과 비슷한 세상이 계속 있어왔다고 믿었습니다. 무한히 먼 과거에서부터 세상이 존재해왔고 조금씩 변해왔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하다못해 진공이라고 하더라도 우주를 담고 있는 공간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시간도 어느 순간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무엇인데? 이렇게 물어보면 마땅히 답변하기 힘들죠. 분명히 지금보다 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늘 경험하며 당연히 여겨지는 것이며, 과거보다 더 앞선 과거도 마찬가지로 부정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주의 시작과 진화를 다루는 학문을 우주론(cosmology)라고 합니다. 1960년대 중반의 뜻하지 않은 발견을 하기까지 이러한 우주론은 대부분의 일반인들과 과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혹은 창조신화적 관점에서 아무 것도 없던 세상 혹은 혼돈의 세상에서 지금과 같이 질서 있고 다양한 세상이 되는 우주적 창조의 사건이 있었다고 믿어왔죠. 사람을 포함하여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믿었으며, 창조를 주관한 초월자인 신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신화에서도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초월자는 스스로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로써 무한한 과거에서부터 있어왔고 창조주가 거주하는 시간과 공간도 무한히 멋 옛날부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물의 기원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배경인 시간과 공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죠.

 

세계의 다양한 창조 신화. 세상의 기원에 대한 궁금함은 지역과 시간을 넘어 인간과 함께 했다.

 

과학에서의 천지창조

빅뱅 우주론의 이론적 근거는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나왔습니다. 아인쉬타인의 장 방정식을 우주에 적용해서 해를 구하면, 정적인 우주가 아니라 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 있었지만 아인쉬타인조차 동적인 우주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인쉬타인은 최대 실수로 여겨지는 우주 상수를 도입하면서까지, 우주는 늘 거의 비슷한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했어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적 근거가 나와서, 과거로 갈수록 우주는 더욱 작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주장이 나와도 많은 과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상상적 믿음은 이렇게 강력하게 사람들을 지배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더 많이 자료가 쌓이고 더 정확하게 관측하게 되면서, 유지되기를 원하는 상상적 믿음은 결국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과학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사회정치적으로 계급 투쟁이나 쿠데타, 전쟁과 같은 강제적 사건이 아니라, 미지의 진실에 더 다가서려는 개방적 태도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보다 합리적으로 이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발전합니다. 개방적이면서도 엄밀한 혹은 엄밀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태도는 발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 영역에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과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큰 가치는 지식보다 이러한 태도가 아닐까요? 따라서 전문가라면, 특히 과학자라면 앎을 설파하는 것보다는, 모름을 대하는 태도를 소중히 여길 것이라 생각됩니다.

르메트르를 만난 아인쉬타인. 허블의 우주팽창 발견 이후에 정적인 우주를 만들기 위한 우주상수를 철회한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방대한 관찰과 실험, 정확한 이론과 체계를 근거로 다른 주장을 합니다. 우주는 그렇게 멀지 않은, 기껏해야 현대인의 평균수명보다 2억 배도 안 되는 과거에(공간적으로 비교하는 인간과 우주는 시간적인 비교와 상대할 수도 없이 크니까요) 갑자기 생겼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시간과 공간도 이때 같이 생겨났다고 말하죠. 그러니까 현대과학에서 볼 때, 창조의 순간 이전을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이죠. 시간도 공간도 없는 것이니까요. 시간이 생겼다고 하니까, 공간도 생겼다고 하니까 정말 이상하기는 합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건지 우리 경험, 관념으로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과학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상식과 안 맞는 그런 일이 있죠. 항상 과학이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객관적 관찰과 합리적 설명이 함께 제공되는 과학이라면 우리의 상식을 되돌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의 생각은 아마도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것도 크니까요. 어느 것이 더 맞는지 여부는 결국, 그것을 더 잘 살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일상 생활에서도 상대방이나 상황을 우리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이라면 상대방이나 상황 자체를 더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과학은 지식을 획득하게 하지만 믿을만한 지식이 되기 위하여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려 하고, 관찰을 더 확장하면서 현재의 지식과 주장이 맞는지에 대하여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대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창조의 순간에 다가서는 관점을 보다 넓혀서, 인간의 신념이나 경험을 넘어서 자유롭게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과학에서 신뢰한다는 것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관찰과 이론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우주가 탄생한 순간에

준비가 됐으며 창조의 순간을 켜겠습니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이전에 여러분들이 들었던 빅뱅 우주론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빅뱅 우주론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시뻘겋고 무시무시한 폭발? 굉음도? 바깥은 깜깜하고 우주가 태어나는 곳은 좀 다르게 보이고 그러나요? 편의상 우리는 창조의 공간까지도 볼 수 있다고 가정해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두 가지 이유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태초의 순간에 우리가 아는 빛은 함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순간 이후로 아주 짧은 시간에 우주에는 가장 커다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빛은 몇 개의 큰 사건들이 지난 후에야 우주에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빛이 나타난 시각과 그 때의 우주에 대해서 현대과학은 꽤 근거를 갖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빛의 탄생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설령 빛이 태초부터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감각할 수 영역의 빛이 아니라는 것이죠.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빛의 영역은 극히 좁은 영역입니다. 태양으로부터 가장 큰 세기로 오는 좁은 영역에 맞춰서 인간과 지구 생명체의 시각은 진화해왔죠. 우주가 시작할 때 빛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주 높은 온도에서 나오는 빛은 감각의 영역 너머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태초에는 암흑 자체에서 감각을 넘어선 변화가 시시각각으로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창조의 순간을 사람이 관찰할 수 있다면, 이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 책을 잘 읽었다고 하면, 이런 반문도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현대과학에서 갖고 있지 않은데, 그것을 어떻게 장담해요? 뭐, 어차피 모르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태초의 순간이 어땠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잘 읽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우주가 시작한 순간과 그 직후의 우주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불가지한 세계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겠지만, 한편 이런 측면에서 태초의 순간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약간 더 시간이 지난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근거를 갖고 과학적으로 말할 수 있으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상황에 대해서는 보다 더 많은 자료와 그 정도 환경이라면 어느 정도 검증된 이론으로 더 자신감을 갖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주가 생겨난 이후에 창조의 사건만큼 커다란 변화는 없었습니다. 이후의 어느 변화도 창조만큼 드라마틱할 수는 없죠. 물론 지금의 우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변화가 있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창조의 순간만큼은 아니죠. 그만큼 우주의 창조는 우주 역사에서 가장 급격하고 큰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창조 이후에 큰 사건들이 있었지만, 현대과학이 꽤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순간부터 과거를 연결시켜보면 과거에 대해 약간의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해서,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과학은 어느 정도 짐작하기도 하고, 더 많이 알고 싶어하죠. 그러나 누군가의 생각처럼, 태초와 그 직후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관측과 부합하는 이론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양자 요동이라든가 반복될 수 있는 우주의 운명 등의 가설도 나름 근거를 보완하려고 하고 있죠. 앞으로도 우주 창조의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관측할 수는 없겠지만, 후손들은 간접적인 방법을 결국 찾아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모든 것을 담은 우주가 이제 나타났습니다. 이 우주가 지금의 우리, 우리가 겪어가는 삶의 갈등과 희열까지 먼 훗날에 만들어냈습니다.

 

더 확실히 알고 있는 덜 먼 과거를 통해서, 더 먼 과거를 추적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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