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재료와 레서피

플랑크 시기

빅뱅(Big Bang 0초)은 공간이 시작된 것이니 점과 같이 작게 우주가 나타납니다. 온도는 1032 K보다 높았습니다. 시간도 함께 시작되어 우주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주의 첫 모습은 신조차 녹일 정도로 뜨겁고, 신이 기거하기에는 너무 작았을 것 같습니다. 우주는 시간이 지나며 공간을 만들어내며 팽창하였고, 덜 뜨거워졌다고 해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이 극한 환경이었습니다. 우주의 어느 생명체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우주 안에서 우주가 시작한 환경을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의 기원인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칭성이 작아지고 다양해진다.

 

태초의 우주는 하나의 원시 힘에 의해 지배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물리학자들의 최종 꿈, ‘자연을 근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역학체계’가 현실이었던 유일한 시기죠. 중력과 양자이론이 하나로 통합될 때에야 비로서 열리는 문 너머의 우주를 그 이상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양자중력(Quantum Gravity) 이론을 향한 인간의 도전은 가까운 시일에 달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여러 이론들이 나와있고 앞으로도 더 나오겠지만, 이론들을 검증할 수 있는 극한 환경을 만드는 기술은 가까운 시일에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우주에서도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이 이론들을 실험이 판정하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입자가속기의 에너지 단위가 높아지고 우주를 관찰하고 측정하는 정확도가 개선되면서, 어느 이론들은 기각 당하며 더 넓은 틀에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 나가야 할 방향은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역학체계가 발달하면서 기본 힘들이 통합되었고 더 먼 과거를 알아가게 된다.

 

대통일 시기

플랑크 시간(Planck time 10-43 초)이 흐르자, 온도는 1032 K로 떨어졌고 중력이 원시 힘에서 갈라져 나와서 힘은 두 종류가 됩니다. 중력(Gravitation)은 알다시피 시공간의 기하학을 만드는 힘입니다. 다른 힘들이 배경 위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것이라면, 중력은 배경이 어떠한 지를 말하는 것이죠. 다른 힘들보다 먼저 중력이 갈라져 나온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플랑크 시기에 배경과 무엇인가의 존재는 서로 섞여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배경과 하나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관념과 그런 실체가 빚어내는 우주를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이제 배경은 자신의 이론에 따라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어서 실체들이 맘껏 뛰어 놀도록 했을 것 같지만, 인간에게는 이 시기를 기술할 수 있는 이론체계가 아직 없습니다. 중력이 분리되었지만,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세 개의 힘이 통합된 어떤 힘 하나가 우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대통일 시기(Grand Unification epoch 빅뱅 후 10-43초 ~ 10-36 초)라고 부릅니다.

중력이 갈라져 나온 후 강력이 분기될 때까지의 대통일 시기를 GUT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아직 이르다.

 

표준 모형은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 상호작용을 잘 통합하고 있으나 강한 상호작용까지 통합하여 하나의 체계로 기술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 세 개의 힘을 하나의 역학체계로 기술하는 이론을 대통일 이론(GUT Grand Unification Theory)이라고 부르며, GUT로 기술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강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색전하나 전자기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전하에 대한 개념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배경과 얼마나 분리되었는지도 말하기 힘들지만, 무엇인가 실체가 있었다면 갈라져 나온 중력에 의한 질량(나중에 전기약 상호작용의 대칭이 깨지면서 현재와 같은 질량이 된 것과는 다른 질량)과 배경인 시공간의 대칭성에 의한 스핀은 존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물론 지금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일 만한 대통일 이론을 현재까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죠. 실체가 시공간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빅뱅 후 10-36 초가 지나자 우주는 더 확장됐고 온도는 1028 K까지 떨어집니다. 대통일 시기를 지배하던 힘에서 강한 상호작용이 먼저 갈라져 나면서 초기 우주는 새로운 시기로 접어듭니다.

강력과 약력, 전자기력은 높은 에너지(우주 초기)로 갈수록 크기가 비슷해지지만, 현재는 자세히 보면 어긋난다.

 

급팽창 시기

새로운 시기는 급팽창 시기(inflation epoch 빅뱅 후 10-36 초 ~ 10-32 초)라는 이름이 말하듯이, 우주가 급격한 팽창을 겪으며 단숨에 공간적 규모를 확장한 시기입니다. 10-32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우주의 규모가 1026 배 이상 커졌습니다. 우주가 어느 정도 크기였을 때 급팽창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1026 배는 아주 큰 숫자입니다. 우주가 원자 하나 정도의 크기(10-10 m)였다면, 급팽창 후에 우주의 크기는 태양계의 규모(1016 m)로 확장된 것과 같습니다. 태양계의 거리 규모(대략 1광년)는 가장 바깥인 해왕성까지의 거리보다 200배 이상 크기 때문에, 불과 10-32 초 동안에 우주가 그렇게 커졌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네요. 비로서 이제 우주다운 규모로 보이게 되었군요.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은 스스로 폭발적으로 팽창(급팽창)하였습니다. 물질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인 공간이 확장하는 것이니, 상대성 이론에 의한 이동속도 제한과 관계는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급팽창한 우주가 끝나가며 초기의 우주는 훨씬 더 지금과 비슷해 진다.

 

이렇게 빛조차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급팽창하면서, 처음에 나왔던 빅뱅 우주론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편평성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급팽창이 있는 현재의 표준 우주론은 보다 더 믿을 만 하게 되었습니다. 창조론과 비슷한, 그러나 신의 영역조차 없는 천지창조가 더 설득력 있게 된 것이죠. 방대하고 정밀한 관찰과 이론적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급팽창 이전에 우주가 어떤 불균형을 갖고 있더라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공간이 확장되면 우주는 거의 균일해지고 어느 방향으로나 비슷한 우주가 되는 것이에요. 울퉁불퉁한 어떤 물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힘도 관여하지 못할 정도로 단숨에 1026 배 커진다면 거의 평평하고 방향에 따른 차이도 없어질 것은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3차원 우주에서 위치에 따른 차이는 10-26×3=10-78, 방향에 따른 차이는 10-26×2=10-52 정도 작아질 테니까요. 아주 작게 남아 있는 차이는 이후에 곳에 따라 별이 생기고 은하가 생겨서 거시적인 구조를 만드는 씨앗이 됩니다. 점차 현재의 우주와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시간도 겨우 10-32 초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아는 어떤 입자도 우주에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급팽창이 끝나가며, 우리가 아는 입자가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쿼크입니다. 급팽창이 끝나가는 시기에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세 힘들 중에서 강한 상호작용(strong interaction)이 먼저 갈라져서 독립된 힘이 되며, 색전하를 갖는 쿼크(색깔 있는 쿼크)와 강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글루온이 나타나서 새로운 시기로 진입합니다.

급팽창으로 우주는 등방적(isotropic)이고 균질(homogeneous) 해졌지만, 아주 작은 차이와 양자 요동은 있다.

 

전기약 시기

새로운 시기는 전기약 시기(electroweak epoch 빅뱅 후 10-32 초 ~ 10-12 초)가 시작되었고, 강한 상호작용과 전기약 상호작용(electroweak interaction)이 우주를 지배하는 시기입니다.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라는 역학체계로 꽤 자세히 기술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며, 실험적으로도 인간이 만든 최고의 가속기가 이 시기의 에너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기약 시기의 우주는 그 이전의 시기와 달리 인간의 영역과 닿아있습니다. 우주가 생긴 직후까지 이론과 실험으로 인간이 접근한 것이니, 대단하지 않나요? 이렇게 현재 인간의 영역은 아득히 먼 과거와 높은 에너지, 더 작은 세계와 더 먼 세계로 확장되어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배가 이렇게까지 인간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이 시기에 쿼크, 반쿼크, 글루온들이 색전하를 통해 강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아는 빛은 출현하지 못했습니다. 전자기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이 결합한 전기약 상호작용 상태에서 입자들은 현재와는 달랐겠죠. 힉스입자도 있었지만 입자들에게 고유한 질량을 줄 준비가 아직 안됐습니다. 신의 입자로 부르기도 하는 힉스 입자는 입자들이 자신과의 결합에 따라 믿음의 증거로 질량을 어느 정도 하사할 것인지 하는 의식이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전자기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하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입자들은 현재와 같은 질량을 갖지는 못한 것이죠. 물질과 반물질도 아직은 누가 더 우세를 지니지 않고 평형을 이루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까지 남았던 두 힘이 현재와 같이 분리되면서 우주는 새로운 시기로 진입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의 우주는 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인간에게 보여집니다.

전기약 시기의 색깔 있는 쿼크-글루온 플라즈마 다이아그램과 핵 충돌 실험으로 재현한 이미지

 

쿼크시기

쿼크 시기(quark epoch 빅뱅 후 10-12 초 ~ 10-6 초)에서 우리가 보고 세상을 이루는 기본입자들 모두 우리가 아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 상호작용이 분리되면서, 불변질량이 0인 빛이 나타나 가장 빠른 속력으로 우주를 질주합니다. 빛과 함께 태어난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 삼 남매는 무거운 질량을 갖고 어느 힘보다도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쿼크도 색전하 외에 전기 전하를 갖고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아직은 자유롭게 쿼크-글루온 플라즈마 상태에 있습니다. 두 힘으로 분리된다는 말은 큰 대칭성이 두 종류의 대칭성으로 나뉘어 진다는 뜻입니다. 전기약 대칭성이 깨지면서 약한 상호작용은 특별한 성격의 힘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세 개의 힘들과 다르게, 물질과 반물질을 구별하고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는 힘으로 나타났습니다. 물질이 10만 분의 1정도 더 많도록 물질-반물질 대칭성이 깨지면서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들이 나타나 별과 행성 그리고 나중에 생명체까지 생길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의 대칭성도 깨지면서 근본적 수준에서 자연에 시간의 방향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힉스 입자는 입자들과 상호작용하는 정도에 따라서 각각 다른 질량을 주며 표준모형에 나타나는 세 종류의 세대를 이루도록 했죠. 쿼크 시기가 되면서 우주를 지배하는 기본 힘 네 가지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들 모두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 역시 자연의 원리와 실체를 다루는 이론과 실험을 갖추었습니다. 이론을 바탕으로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한 이미지도 그림과 같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전기약 대칭이 깨지면서 입자들이 현재와 같아진다. 빅뱅 후 10-12 초 정도의 대칭 깨짐을 시뮬레이션 한 이미지

 

이제부터는 우주의 진화를 더욱 정확하고 믿을 만 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본입자와 기본 힘들이 모두 갖춰진 쿼크 시기에 우주의 온도는 1012 K까지 내려갑니다. 우주에서 내어 놓을 수 있는 다양한 천체와 물질들의 기본재료인 입자와 요리법인 힘들이 준비되었으니, 이제부터 우주가 어떤 요리를 어떻게 만들어서 내놓는 지를 볼 단계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빅뱅 후 백만 분의 1초가 지난 시각입니다. 다음 시기는, 지금까지의 시간(10-6 )가 백만 번(106) 일어나는 시간 동안에 진행되는 사건의 시기입니다. 우주가 첫 요리를 내놓는 시기죠. 과연 어떤 요리가 나올까요?

 

세상은 미시적인 세계에서 거시적인 세계로 펼쳐있고, 현대의 과학자들은 꽤 넓은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니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무리 우주가 급팽창하고 드디어 우리가 아는 입자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해도, 그것이 도대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먼 과거의 일일 뿐이 아닌가? 생각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루하게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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