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원리의 이해, 들어서기

과학은 자연을 들여다보고 인간에게 들려준다. 인간은 자연을 아는 만큼 삶을 변화시켜왔다. 자연현상을 보고 반응하는 것을 넘어, 자연현상을 예측하고 이용하게 되면서 인간은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과 달라졌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과학혁명을 완성한 뉴턴이 복잡 다변한 지상계와 신비한 천상계를 보편적 자연원리로 통합하면서, 인간은 지구 생명체를 넘어 우주적 존재가 되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시공간의 점으로 한 번 명멸하는 삶의 생물적, 사회적 한계를 넘어 시공을 넘나들 수 있는 우주적 존재라는 사실을 나누고 싶은 바램을 담고 싶었다. 과학의 혜택을 이미 받고 있는 우리는, 객관적 관찰과 합리적 사고가 얼마나 많은 이해와 풍부한 성취, 다음 단계로 접어드는 통찰을 주는지를 의심할 수 없다. 과학이 이룬 성취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내게 한 과학의 안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은 과학의 정체를 들여다 보는 과정을 담으면서도 우리 삶 및 사회와도 소통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연과 과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연의 기본 원리와 과학의 기본 개념들을 올바르고 엄밀하게 소개하고자 했다. 구성적 측면에서는, 빈 터에서 시작하여 이해의 기반이 되는 주춧돌을 쌓아 가면서 독자의 과학적 사고를 자극하고 현대물리학의 성취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지구에 피고 졌던 수 억 종의 다양한 생물들의 시작인 공통조상이 있었듯이, 현대까지의 놀라운 과학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던 최초의 과학 씨앗을 찾고 심어서 키우는 과정을 경험하며 지식과 과학적 사유를 넓혀갈 것이다.

최근에 교양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여, 좋은 책들도 많이 나오고 과학강좌도 여러 곳에서 열린다. 필자도 학교나 도서관에서 과학을 강의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접하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과학 도서와 강연은 몇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것 같다. 인공지능, 뇌과학, 현대물리학과 같은 최근의 과학 및 생명, 우주, 진화, 양자역학과 같이 매력적인 주제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것 같다. 필자도 입자물리학 이론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과학에 다가서는 사람들의 시선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가장 최신판에 실린 진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인간이 등정한 자연의 최고봉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 신비한 진리에 대한 호기심, 나를 알고자 하는 불안한 열정에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관심이 높은 분야의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분야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것을 문제로 의식한다.

일반적으로 관심이 높은 분야의 과학들은 그 이전의 과학적 지식과 개념들을 기반으로 성취된 것이고, 과거의 이론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녔고 어떠한 관점에서 틀렸지만 어떠한 관점에서 충분히 좋은 이론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과학 이전의 철학에서 현재의 철학 및 과학에 이르기까지 시간, 공간, 운동, 작용, 변화, 관찰, 논리와 같은 주제는 늘 중요하며, 현재의 과학을 낳은 씨앗이 무엇인지, 현대과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본적인 물리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고전 역학을 만나야 한다. 과학혁명이 왜 뉴턴 역학에서 완성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뉴턴 역학의 끝에서 시작되는 현대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물론 유통기한 지난 것에 구태여 시간을 들이기보다, 신선한 과학의 맛깔스런 지식에 눈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중에서 고전역학에 대한 책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현대과학 및 현실과의 접점을 풀어내는 책은 더욱 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러한 필요와 문제의식으로 출발하면서도, 더 욕심을 내어 과학적 사고를 자극하고자 했다.

고전역학에 대한 첫 느낌은 아마도 고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문학에서 고전이라고 하면 시간을 넘어 현대인에게도 많은 것들을 시사하는 명저로 느껴지지만, 급변하는 과학에서는 빛 바랜 이론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느낌은 거의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들 대부분 고전역학으로 잘 설명할 수 있고, 경험을 통해 형성된 우리의 인식, 상식과 사유는 고전역학적이다. 화성에 우주선을 안착시키기 위해서, 우주선에 필요한 것은 고전역학으로 충분하며, 양자역학에서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는 것으로 기술되는 미시물질의 정체성 혼란은 고전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 적지 않다. 거시적 세계를 기술하는 파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미시적 세계를 기술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시적 물질의 정체성 혼란은 우리 감각이 접하는 거시적 세계에서 형성된 관념과 관점에 속박된 우리의 태도가 문제일 뿐, 기괴한 존재가 아니다. 이러한 관찰자의 한계와 문제 그리고 양자역학 다음 단계의 과학에서 어떻게 이러한 이슈를 풀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본문에서 이야기했다.

고전역학은 단지 과거의 지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배하는 현상과 관념을 더 이해하고 자성하는데 중요한 시사점들을 준다. 우리는 현상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고전역학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고전역학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현대과학의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황들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그 너머로 인식의 창을 열기 위하여 우리는 고전역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를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러한 역할을 해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막상 초고를 마무리하고 보니 필자의 역량 부족을 절감한다. 여러 면에서 서툴지만 그만큼 독자에게 비평적 시각을 자유롭게 받아들일 준비도 하고 있다. 어느 부분은 너무 쉽고 느리며, 어느 부분은 거칠고 너무 빠르게 넘어가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등속도 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 빠르기가 변하기도 하고, 갑자기 방향이 변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독자가 느낄 가속도를 염려하면서 더 다듬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독자가 예기치 않게 느끼는 가속도와 어지러움은, 완전초보 운전자가 모는 차를 탄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 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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