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채롭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다양한 현상을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를 찾을 수 있다면 인간은 자연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자연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고, 현대문명은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과학사적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서점이나 도서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이 책에서도 일부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자연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자.
복잡한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자연현상은 너무나 다양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어떠한 현상에 주목하는지에 따라서 필요한 것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현상을 이루는 범주를 하나의 ‘계(界 시스템)’라 하고 계의 바깥을 ‘환경’이라고 부른다면, 계의 변화는 환경에 의한 영향과 계 내부의 원인이 모두 반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환경에 의한 영향을 고려할 때, 우리는 계와 환경이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는지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계 내부에 의한 영향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계를 부분으로 나눌 수 없거나 나눌 필요가 없다면 계를 지배하는 자연원리만 알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간이 접하는 자연의 사물과 현상은 더 작은 부분들이 모인 것이다. 복잡한 현상이나 사물이 어떠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분들이 서로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여 전체를 구성하고 특성을 나타내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부분들로 이루어진 계가 내부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를 알 수 없다. 계와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계 내부를 알 수 없다면 환경이 계와 어떻게 작용하여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별다른 지식을 갖지 못하면서도 복잡한 자연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계의 내부적 구성을 단순화시킬수록 여정을 풀어나가기 쉽다. 계의 내부적 구성을 단순화하는 방법은, 주목하고 있는 계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기체와 같이 밀도가 희박한 계를 기술할 때, 크기를 무시할 정도로 작은 입자들이 무작위로 서로 탄성충돌을 하며 서로 간에 다른 상호작용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순화해도 나쁘지 않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길가의 돌을 집어서 던질 때도, 돌을 밀도가 균일한 구로 단순화해서 돌의 운동을 기술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계의 내부를 단순화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단순화한 기본적 수준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원리를 알지 못하면 결국 그 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단순화된 계에 대해서 작용하는 자연 원리를 알아야만, 단순한 것들로 구성된 보다 복잡한 계가 나타내는 현상을 설명할 준비를 그나마 갖게 된다.
우리는 운동을 지배하는 자연원리를 알고 싶다. 물체는 왜 땅으로 떨어지며,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는지, 하늘에 있는 천체들은 왜 저렇게 운동하는지, 악기는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우주공간을 달리면서도 스스로 자전하고 있는 지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왜 이렇게 조용한지… 등등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상황을 가장 단순화 시켜서 생각할 것이다. 어느 물체의 운동을 생각할 때, 물체를 크기는 갖지 않고 질량만 갖고 있는 추상적인 질점(질량만 갖는 점)으로 단순화할 것이다. 질점을 지배하는 운동원리를 알 수 있다면, 여러 질점들이 모인 계와 그 계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드러내는 현상과 작용도 구체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들부터 이해하려고 하는 환원주의적 태도는 과학에서 자연스럽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하지 않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근거 없는 가정을 세우는 것을 경계하며, 적합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상황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 지를 돕는다.
과학은 무엇(현상, 원리)을 설명하기 위한 모델(혹은 가설)을 잘 세우고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며, 그 가설이 적용될 수 있는 조건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남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단순화된 모델로 자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겠지만, 자연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라면 그 모델을 보완하며 자연의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도록 개선해 갈 수 있다. 어차피 우리는 실체를 그대로 인지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과 인지가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관찰하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관찰 및 관찰자의 한계는 필연적이면서도 발전의 여지를 갖는다. 그러나 관찰과 이해에 있어서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우리는 진리에 다다를 수 없어. 실체는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것이야.”와 같은 관점으로 과대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근원적 실체는 인간의 손과 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속한 것이지만, 한계를 개선해가면서 우리는 진리와 실체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과 문명은 발달하며 다음의 단계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불가지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며 불완전하기 때문에 겸손해야 하고, 발전할 수 있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며, 개방성과 자유를 만끽할 권리와 책임이 함께 한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IV장 1절의 ‘과학은 무엇일까?’에서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가장 단순화한 질점에 작용하는 자연의 운동원리는 사실 과학의 성배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어떠한 자연원리를 따르는가 하는 것은, 보다 복잡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먼저 알아야만 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성배와도 같은 이 자연원리를 우리는 직관과 추론만으로 도출하려고 한다. 학교에서 배울 때나, 고전역학의 어느 책을 보더라도 뉴턴의 운동법칙은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전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 위대한 자연법칙의 원리를 교리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성찰을 통하여 도출할 것이다.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경험적 상식과 함께 자연스럽게 논리가 흐르도록 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