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햇볕이 풍부하게 내리는 이천육백 년 전의 밀레토스는 이오니아 지방의 상업적 중심지였으며 최초의 철학 학파가 있었다. 지금은 터키 영토지만 과거에 고대의 그리스 영토였던 이곳에서 자연현상들을 인간의 영역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최초의 수학자, 철학의 아버지, 고대 그리스 7대 현인 중의 한 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탈레스(Thales 대략 기원전 642~546)는 기원전 585년 5월 28일의 일식을 예견했고 ‘탈레스의 정리’(반원의 원주각은 항상 직각이다)를 증명했으며,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로 존재의 근원을 규명하려고 했다. 비록 어떤 부분들은 당시의 기술수준과 논리체계가 부족하여 검증할 수 없는 가설적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나, 알 수 없는 것으로 포기하거나 신과 같은 인간 너머의 초월자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인간의 영역 안에서 자연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집단적으로 형성하고, 이러한 정신유산을 후대에 남겼다. 인간의 논리로 체계를 갖추려 했고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검증하려고 한 것은, 과학의 여명으로 불릴 만 하다. 이러한 이성적 활력은 고대 그리스를 발달시킨 바탕이었으며, 향후 세계의 지성과 문명, 과학을 발달시키는 씨앗이었다.

탈레스의 제자였을 수도 있는 피타고라스(Pythagoras 대략 기원전 570~495)는 “수는 만물의 근본이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수를 통하여 세상을 설명하려고 했다. 직각삼각형의 세 변에 대한 관계는 오래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등 여러 문명에서 알려져 있었으나, 일반적인 직각삼각형에 대해서 을 증명한 것은 피타고라스 학파가 최초로 보인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학파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피타고라스 학파를 예기치 못하던 파국으로 끌고 갔다. 제곱이 들어간 정리는 필연적으로 무리수를 잉태하고 있었고, 무리수의 출현은 세상을 자연수로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무너뜨렸다. 또한 단위길이에 대한 비율로 모든 크기를 나타낼 수 있다고 가정하며 했던 기하학 정리들의 증명은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무리수는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재앙이었겠지만,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수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 실수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후에 플라톤의 제자인 에우독소스(Eudoxus 대략 기원전 390~337)가 비율이론을 사용하여 피타고라스 학파의 기하학 증명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1].

플라톤의 또 다른 제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형이상학적 업적 외에도 현상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중시하며 동물학, 광학, 역학 등 자연과학에도 다양한 성취를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지식에 기여했을 정도며, 서구세계에 가장 오랫동안(이천 년 이상)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관찰보다는 관념이 강했으며, 훗날 관찰에 근거한 추론으로 반박되고 과학혁명기를 거치며 과학의 영역에서 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지식에 기여했을 정도이며, 서구세계에 가장 오랫동안(이천 년 이상)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볼 수 있다.
다른 분야의 막대한 유산들을 제대로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걸출하고 개성 있는 철학자들이 많았다. 뛰어난 과학자이자 공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 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 프톨레마이어스의 천문학, 갈레노스의 해부학, 디오판토스의 대수학 등 고대 그리스의 현인들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세상의 원리를 찾고자 했다.

한편 인간의 병을 주술사나 미신, 종교에 의탁하지 않고, 의술을 인간의 영역에 들인 히포크라테스(460 ~ 370 BC)도 훌륭한 과학자로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잘 알려진 히포크라테스는 임상관찰을 중시하며, 객관적 관찰과 합리적 추론을 통하여 치료하며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히포크라테스는 현상의 올바른 관찰과 합리적 추론을 실행하여 아테네의 전염병을 몰아냈고, “의학은 하나의 학문이자 과학이다.” 라는 일관된 사고방식으로 인간의 영역을 한층 안전하게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재산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정복 이후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져 헬레니즘 시대에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지만, 로마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과학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5세기에 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이 천 년의 암흑시대를 거치는 동안, 아랍은 고대 그리스 과학을 보존하고 소화하며 독립적인 성취도 내었다. 아랍의 성취와 고대 그리스의 유산은 잔인한 십자군 전쟁[2]을 거치면서도 유럽에 전파되어, 인간중심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문예부흥운동(르네상스)이 일어났고 초월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인간이 개척할 수 있도록 하였다.
[1] http://bitly.kr/QNLu 및 “수학의 위대한 순간들” (경문사) 참고
[2] Crusades 1095–129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에 십자군이 저지른 학살과 약탈을 공식적으로 사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