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과학의 속성

과학에 대한 정의와 각 용어의 정의를 구체화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속성이 과학에 내재된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A. 한계성: 과학은 관찰자의 관찰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얻은 정보를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은 다음과 같은 본질적 한계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한계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i) 환경의 한계성

과학에서의 주장하는 것을 완벽히 구현하는 이상적인 실험조건이나 자연환경이, 현실에서 완벽히 구현되지는 않는다. 피사의 사탑에서 가벼운 물체와 무거운 물체를 같이 떨어뜨려도 동시에 지면에 닿지 않는 것은, 진공상태에서 낙하실험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1]. 즉, 관찰은 귀납적인 행위이고 대표성을 갖는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며, 관찰환경은 완벽하게 이상적이지는 않다.

 

ii) 관찰자의 한계

관찰자의 감각과 의식을 통하여 현상을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감각과 의식 너머에 있는 자연의 몸짓과 진심이 관찰자 내부로 스며들 수는 없다. 또한 관찰자가 획득한 정보들을 범주화하고 속성을 추론하여, 이론적 체계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관찰자의 역량 안에서 정리될 수 있는 것들만 정리된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한계만이 아니라, 관찰자라는 생물 종의 생리적 특성이라는 보편적이지 않은 한계요소도 있다. 이러한 관찰자의 개인적, 보편적 한계는 추후에 개선될 여지가 있으나 여전히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관찰자의 한계는 존재한다.

 

iii) 관찰의 한계

관찰하는 대상이 관련한 현상들을 모두 대표한다고 단정할만한 보장은 없다. 특정한 환경과 조건에서 현상을 관찰하고 속성을 추정하는 것이다. 관찰 대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기기가 닿을 수 있는 만큼의 영역, 대상의 전체가 아닌 부분을 보는 것이다. 망원경이 인간의 감각세계를 넓혔고 현미경이 얼마나 세밀하게 자연을 볼 수 있게 했는지, 이전의 관찰자들이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이전에는 고에너지 우주선에서 뮤온 입자를 관찰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뮤온이라는 개념, 존재 자체를 생각도 못했을 것이지만, 현대물리학은 뮤온의 반감기가 길어지는 것을 관찰하여 특수 상대성이론을 지지할 수 있다. 빅뱅 우주론의 흔적인 우주 배경복사나 초전도체, 전자의 파동성 등 중요한 실험적 이론적 대상들이 그러하다. 관찰은 그 시대의 기술적 한계와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본질적 한계, 관념의 한계라는 벽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관찰의 그러한 한계는 개선될 수 있고, 개선되며 과학을 보다 신뢰성 있게 하였다.

 

iv) 표상의 한계

관찰자가 다룰 수 있는 언어, 기호로 실체를 표상하는 과정은, 이론을 만들기 전의 전처리 단계로 볼 수 있다. 실체는 표상이라는 본뜨기 작업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왜곡되거나 축소되고 과장될 수 있는 개연성이 늘 존재하며, 이것이 표상으로 구성되는 이론을 부실하게 할 위험성은 잠재한다. 표상은 관찰자의 도구이며, 도구는 개선될 수 있으나 한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v) 이론의 한계

(드러난) 현상과 (내재한) 속성을 엮어서 자연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이론은, 논리체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논리체계는 완전하지 않다. 관찰을 통한 자연의 검증과 더불어 이론적 기초의 불완전성과 논리적 검증역량의 한계는, 시대의 역량과 관계되며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과학의 부족함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진리를 찾는데 있어서 당당하기 때문에 갖는 겸손함이다.

 

 

B. 개방성: 과학은 위와 같은 한계성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식과 활동에 대해서 개방적 속성을 갖게 된다.

 

과학은 현재의 성취를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면서 귀를 막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은 한계성을 인식하고 한계를 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이다. 현재의 과학적 성취는 현재의 관찰 및 이론의 범주 안에서 검증된 것이며, 기술과 이론의 발달,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방법의 관찰에 의해서 혹은 관찰자나 관찰대상의 질적인 변화를 통해서 수정될 수 있다. 여기서 수정이란 대부분의 경우에 개선되는 활동이며, 수정된 이론은 현재까지의 현상과 새롭게 발견된 현상 그리고 예측되는 현상에 대하여 더 나은 설명을 하는 것이다. 과학의 영역마다 그 성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영역에서는 개선된 이론이 되기도 하고 어느 영역에서는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

과학이 개방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의심할 수 있으며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을 쫓아낼 활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습과 종교적 요구, 권력의 취향과 사적인 이득 등 과학 외적인 것들로부터 과학의 개방성이 제약을 받는 것은, 과학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고 과학의 발달을 가로막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과학은 한계성을 인지하고 개방성에 적극적일 때 더 발달해 왔다. 과학은 개방적이지 않을 때 비과학으로 빠져서 침체하고, 한계를 이해하지 못할 때 유사과학으로 변질되었다. 과학은 과학 외적인 요소로부터 구속되지 않아야 성장하며, 내적인 요소에 의해서 엄격하게 검증되어야 풍요로워진다.

 

 

C. 검증 가능성[2]: 과학의 개방성은 검증에 대하여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검증 가능한 영역으로 과학을 한정한다.

검증이 가능하지 않은 영역을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적 검증 역량은 개선되고 검증 가능한 목록은 늘어갔다. 즉, 과학의 영역은 시대에 따라 확장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만물의 근원에 대한 주장들은, 검증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이라기보다는 사변적 가설이다. 현대에는 입자가속기와 우주선(cosmic ray) 등으로 만물의 근원인 기본입자들을 직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기본입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 사변적 주장에서 과학으로 변한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것들이 검증의 목록에 기록되고 검증되며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과학이론은 기존 현상의 설명, 새로운 관찰의 예측, 논리적 엄밀성, 다른 이론들과의 관계, 보다 보편적인 원리들과의 일관성으로 검증될 수 있다. 새로운 이론은 자신을 증빙할 수 있는 새로운 예측을 통해 검증 받아야 한다. 검증 가능성을 기존 이론보다 더 확보하지 못한 이론은 잠재적으로는 다르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이론과 같은 것이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검증 가능성은 관찰의 영역만이 아니라, 이론의 영역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 과학이론은 실체에 대한 이론이기 때문에 관찰이라는 검증이 더 중요하다. 관찰과 부합하지 않으면서, 수학적으로 더 아름답고 체계적인 이론들이 적지 않다. 양자장론은 고전역학보다 더 자연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양자장론의 수학적 기초는 아직 고전역학보다 굳건하다고 볼 수 없다. 엄격한 검증은 실체에 다가서는 방법이며 진리가 왜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검증이 엄격할수록 과학적 성취는 빛나고 진리는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나며 자유로워진다.

 

한계성, 개방성, 검증 가능성이라는 과학의 속성은 과학을 하는 방법과 과학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주지만, 이 책에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과학적 성취를 아는 것 못지 않게, 과학에 대한 속성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필자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전달하려는 것이 이 책의 범위로 생각한다.

 

[1] 갈릴레오의 자유낙하 실험관련 등 http://bitly.kr/awc4 참고

[2] 포퍼의 ‘반증 가능성’과 유사한 의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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