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량
우리가 지금껏 역학과 물리량을 다루면서도, 수학적인 관점을 이야기하면서 물리적인(실존적인) 개념에 소홀히 한 것 같다. 우리는 현실 세계를 기술하는 물리량들을 보다 잘 살펴볼 가치가 있다. 수학의 변수에 물리량이 대응되어야만 자연과 만날 수 있다.
물리량과 단위계
추상적인 논리구조를 연구하는 수학에 등장하는 문자와 변수들은 가볍다. 명제와 논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매개적인 역할을 하고, 문자 자체적으로 어떠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과학에 등장하는 문자와 변수들은 모두, 실제 자연에 있는 무언가를 나타낸다. F = ma 에서 각 문자에 해당하는 물리량이 있다. 길이, 시간, 거리/시간, 질량, 힘, 가속도, 탄성계수, 면적, 에너지, 확률, 전하와 전류 등 우리 세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원되는 물리적 개념과 물리량들이 있다. 어떤 물리량들은 더 기본적인 물리량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중요하거나 자주 나오는 경우에 별도의 기호와 이름을 갖기도 한다. 가령, 속력(=이동거리/시간)이라는 물리량은 길이와 시간이라는 기본 물리량으로 표현할 수 있고, 마하는 속력이지만 음속에 대한 상대적인 값을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힘의 단위인 뉴턴은 질량과 길이, 시간으로 환산하여 나타낼 수 있지만, N으로 쓰고 뉴턴이라고 읽는다. 물리량의 물리적 차원에 대한 개념은 1822년 푸리에가 도입하면서 과학에 사용되었다. 물리량들은 고유의 자기 차원을 가진 기본 물리량으로 구성된다.
어쨌든 물리량들은 자체단위를 갖든, 기본단위로 표현되든지 간에 물리적인 실체와 개념에 해당되는 단위를 갖고 있다. 1822년에 푸리에가 물리량에 물리적 차원(physical dimension)을 표기하는 것을 도입하였으며, 기본 물리량을 국제표준 단위계인 SI 단위에서 정한 바에 따라 표기한다. 측정 표준 분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2018년 11월에 의결하여 7 개의 기본 측정단위 중에서 4 개(질량의 kg, 전류의 암페어 A, 온도의 켈빈 K,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 mol) 값의 정의를 자연의 기본상수를 기준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의결했다.[1] 이로써 기존에 시간, 길이, 빛의 밝기와 같이 이미 기본상수를 이용해 정의했던 단위를 포함하여 7 개의 기본 SI 단위들은 빛 속도, 플랑크 상수, 볼츠만 상수, 기본 전하와 같은 과학의 기본상수들로 정의된다.
차원 분석(dimensional analysis)
물리적 차원은 공간이 몇 차원이냐 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공간과 같은 기하학이나 집합, 대수 등 수학에서 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원소를 결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변수가 몇 개인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과학에서 단위를 지칭할 때의 차원은 물리량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수학에 등장하는 변수와 달리 더하거나 뺄 수 없다. 가령, 거리와 속력을 더한다든가 질량과 전하를 더하는 과학 식은 있을 수 없다. 같은 단위끼리만 더하고 뺄 수 있으며, 다른 단위끼리는 곱하거나 나눌 수는 있다. 질량과 속도를 곱하여 운동량이라는 물리량에 대응시킬 수 있지만, 1시간과 물 2리터를 더할 수는 없다. 물 2리터를 1시간으로 나누면, 아마도 시간당 소비되는 물의 양이라든가 어느 급수장치가 1시간에 물을 정화하는 능력의 기준을 나타내는 뜻으로 현실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단위끼리만 가감할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물론 이유가 있다. 과학에서 가설을 세우고 식을 만들 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좌변에 등장하는 차원과 우변에 등장하는 차원이 같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물리량의 차원을 따지는 것을 차원 분석(dimensional analysis)이라고 하는데, 차원분석은 때때로 유용하다.
가령, 자유낙하 하는 물체를 생각해보자. 이 물체가 h만큼 떨어졌을 때의 속력 v 혹은 시간이 t 지났을 때의 위치나 속력과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구할 수 없을까? 우리에게는 아직 운동법칙이 없다. 단지, 이 물체의 질량은 m이고 중력가속도 g만 알고 있다.
차원 분석을 통해 임의의 시간 t에서의 속력과 t 동안 낙하하는 거리의 관계식을 구해보자.
속력은 ‘길이/시간’의 차원을 갖기 때문에, ◍도 길이/시간의 차원을 가져야 한다. 자유낙하 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질량과 중력가속도, 시간이 있다. 질량은 kg 단위를 쓰므로 ◍에 나타날 수 없고, 중력가속도의 단위는 ‘길이/시간2’이므로 중력가속도 g에 시간 t를 곱하면 길이/시간의 단위가 된다. 따라서, (식 ①)은 다음과 같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v ∝ g t (식 ①’)
이제, 시간 t 동안 낙하하는 거리 관계식을 구해보자
h ∝ ▨ (식 ②)
(식 ②)의 좌변은 길이 차원을 갖기 때문에, 우변의 ▨도 길이 차원이어야 한다. 이것은 중력가속도 g에 시간 t2을 곱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유낙하 하는 경우에, 차원을 맞추기 위하여 다른 변수(가령 물체의 색깔이나 밀도, 형태 등을 고려하고 싶지는 않다. 공기저항을 무시하는 경우의 규칙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를 추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러한 추정은 받아들일 만 하다.
h ∝ g t2 (식 ②’)
(식 ②’)를 해석하면,
“자유낙하 하는 물체가 낙하하는 거리는 질량과 무관하며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 것은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물체의 질량과 상관 없이 동시에(같은 시간에) 땅에 도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낙하거리가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도 말하고 있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풀거나 복잡한 사고를 전개하지도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갈릴레오가 주장했던 것을 차원분석만으로 보일 수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길이 l의 끈에 매달린 추가 중력을 받아서 진동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진자의 주기 T 는 길이와 중력가속도로 어떻게 표현될까? 주기가 질량과 관계될 수도 있으니 질량도 고려할 수 있다. 알다시피 주기 T의 물리량은 시간이다.
T ∝ ▼ (식 ⑤)
(식 ⑤)의 ▼이 시간의 단위를 가져야 하므로, 질량이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즉, 진자의 주기가 질량에 무관할 것이 예상된다. 길이/시간2 단위인 g와 길이 단위인 l을 합성하여 시간 단위가 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T ∝ √(l/g) (식 ⑥)
이 (식 ⑥)을 해석하면, 줄에 매달린 추는 길이의 제곱근에 비례하는 주기를 갖는다. 즉, 괘종시계를 좀 느리게 조정하려면 추를 좀 더 아래로 내리면 된다고 말한다. 이 식은 진폭이 작을 때, 꽤 훌륭하게 성립하는 것을 운동방정식을 풀어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차원분석을 통해서, 진자의 주기가 길이에 대해서 어떻게 관계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주기를 2배로 늘리기 위해서는 줄의 길이를 4배 늘려야 한다. 또한 괘종시계는 중력가속도와도 관계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잘 맞던 괘종시계도 고산지대에 올라가면 중력가속도가 작아져서 시간이 맞지 않을 것이다. 중력가속도가 작아진 만큼, 추의 길이를 줄여야 정확한 괘종시계로 맞출 수 있다.
단순조화진동을 하는 물체에 대해서도 차원분석을 써서, 주기가 용수철 상수 k와 질량 m에 어떻게 의존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여러분들이 직접 해보기 바란다.(라고 썼지만 아래에 관련 자료를 추가하였습니다;;)
용수철 상수 k가 정의되는 후크의 법칙 F=k x 와 운동 제2법칙 F=m a 를 고려하여, 시간을 물리량으로 하는 주기가 진동하는 물체의 물리량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물리적 직관과 잘 어울리는지도 음미해보기를 바란다. 복원력이 센(~ 단단하게 결합된 ~ 용수철 상수가 큰) 스프링에 매달린 진자의 주기는 짧다. 물론 복원력과 변형된 길이와의 관계식(후크의 법칙)인 F = k x를 보면, 같은 힘 F를 주어도 k(용수철 상수)가 클수록 변형(평형점으로부터의 거리)이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미시적인 분자의 세계에서도 단일결합보다 이중결합으로 단단히 결합된 분자의 진동 주기가 짧다. 즉, 진동 주파수가 짧아서, 분자진동에 따른 빛의 에너지가 높다. 미시적 세계나 화학, 생물학에서도 물리적 직관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주기 T ∝ √(m/k) 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조금 더 차원분석을 활용해 보기로 하자. 앞에서, 유체에서 운동하는 물체가 받는 저항력이 실험에 의하여 속력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차원분석을 통하여 이것을 추론해낼 수 있다.
이것이 앞에서 보았던 내용이며, 아래의 슬라이드를 보도록 하자.
여기서 운동하는 물체에 가하는 유체의 저항력이 속력의 제곱에 상응하는 차원을 가져야 함을 설명했다.
[1] 단위계의 정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http://bitly.kr/F9NhL 자료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