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 양자역학

빛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소중하지만, 현대과학을 비쳐주었다는 과학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맥스웰이 전자기 현상을 통합하는 방정식에서 빛을 끄집어 낸 후, 빛은 더욱 더 물리학자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빛은 자신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운동과 무관하게 빠르기가 일정하다는 당황스러운 주장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열된 물체에서 나오는 자신의 스펙트럼을 왜 인간이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지 강하게 물어왔다. 물리학자들은 최신 이론인 맥스웰 방정식 혹은 열역학을 사용해도 흑체복사로 불리는 자연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침내 20세기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1900년 12월 중순에 플랑크는,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물체 안에서 빛의 에너지가 띄엄띄엄 하다고 가정한다면 흑체복사 현상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주류 학자들의 거센 반박에도 불구하고 원자와 분자와 같은 미시적 실체를 주장했던 통계물리학의 선구자 볼츠만은, 이미 1887년에 물리적 계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일 수도 있다고 제안했었다. 플랑크는 볼츠만의 통계물리 이론을 반박하려고 손댔던 흑체복사를 연구하면서 볼츠만의 관점을 중시하게 되었고, 마침내 빛 에너지가 진동수에 비례하며 양자화된 값을 갖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어 1905년에 아인쉬타인은 브라운 운동을 설명하면서 원자나 분자와 같은 미시적 물질의 실체를 확실히 설명했고, 같은 해에 빛은 흑체에서 만이 아니라 진공에서도 양자화된 에너지를 갖는다고 가정하며 광전효과를 설명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1913년에 보어의 원자모형을 거쳤지만 양자이론은, 1925년에 하이젠베르그의 행렬역학에 와서야 비로서 물리량의 시간적 변화를 계산할 수 있는 역학체계가 되었다. 곧 바로 쉬뢰딩어가 드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을 활용하여 파동 방정식 형태로 양자이론의 역학체계를 제안하였고, 이후에 행렬로 기술된 체계와 파동 방정식으로 기술한 체계가 동일하다는 것도 증명하였다. 양자역학의 발달에 기여한 학자들과 그 성과는 너무도 많고 눈부시기 때문에, 이 책에서 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교양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양자역학에 대한 책을 읽어 봤으리라고 생각하며, 필자의 관점에서 몇 가지만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양자역학이라고 부르는 이론은 양자이론에 대한 종착점이 아니며, 쉬뢰딩어의 파동방정식 혹은 동등한 하이젠베르그의 행렬역학은 검증된 특수 상대성이론과 어긋나기 때문에 올바른 양자이론이 아니다. 따라서 이 단계의 양자역학 풀이에서 나오는 결과와 관점들 중에서 어느 것은 과장되게 시중에 퍼지고 있는 것들이 있고, 어느 것은 다음 단계에서도 유지될 정도로 양자현상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행렬역학과 파동방정식은 수학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사용해도 같은 결과를 내지만, 쉬뢰딩어의 파동방정식이 다루기 쉽고 보른의 확률해석에 의해 더 직관적인 결과를 주므로 과학자들은 쉬뢰딩어 방정식을 선호해왔다. 쉬뢰딩어 방정식이 자체적인 한계를 갖고 있지만, 어느 제한적 물리 계에서는 좋은 근사로써 적용할 수 있고 보다 쉽게 풀 수 있기 때문에 양자역학 교과서에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쉬뢰딩어 방정식을 옳은 역학체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 의견으로 다음과 같은 영역을 주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쌍생성, 쌍소멸과 같이 입자의 개수가 변하는 일반적인 계에 적용할 수 없다. 물론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하거나 뮤온이 전자로 붕괴하는 등 입자의 형태가 변하는 핵물리학이나 입자물리학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을 기술할 수도 없다.
  • 스핀이나 반물질 등과 같은 자연의 속성과 실체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못한다. (물리학자들은 “손으로 넣어주어야 한다.”는 식의 표현으로 불만스럽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 상대론적이 않기 때문에, 속도가 빠른 계에 적용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단 이 정도만 언급하고, 다음 단계의 양자이론에서 좀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리고 다양한 양자역학의 해석 및 양자역학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며, 슬릿을 통과하는 미시물질의 간섭과 관련하여 짧게 이야기해본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 물론 아래의 전자는 광자 혹은 원자와 같은 미시물질로 대체해도 내용의 흐름은 같다.

“전자는 입자이므로 두 슬릿 중의 하나만 통과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파동처럼 간섭무늬가 나타나는 것일까? 전자가 어떤 때는 입자처럼 행동하다가 어떤 때는 파동처럼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그런데 과연 이 의문은 정확한 것일까?

 

파동이 무엇인지 우리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물리적으로 볼 때, 파동은 미시적 입자들(매질)이 단체로 진동하는 것이 거시적으로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파동은 미시적인 개념이 아니라 거시적인 개념이다. 파동을 물리적으로 미시적 차원에서 구성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가령 진공에서 움직이고 있는 전자와 같은 미시적인 계를 기술할 때 아무런 매질이 없는 상황에서 전자를 파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더욱이 거시적 개념인 파동이 전달하는 것은 전자와 같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운동에너지일 뿐이다. 마치 18세기 말까지 열을 물질로 생각하던 열소 이론(Caloric theory)이 생각난다.[1] 열이라는 물질이 출입해서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거시적으로 온도 혹은 열로 정의 혹은 관찰되는 것처럼, 매질을 이루는 미시적인 물질들의 진동이 거시적인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이 파동이다. 열의 전달이 물질이 아닌 열 에너지의 전달인 것처럼, 파동은 물질이 아닌 진동에너지의 전달이다. 진공에서 전자라는 물질이 이동하는 것과 제자리에서 단진동하고 있는 미시적 물체들의 진동이 전달되는 파동은 분명히 물리적으로 다른 상황이며, 전자를 파동으로 보는 견해를 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회절, 간섭무늬가 나타내는 자연현상은 전자를 파동처럼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혼란은 어디서 온 것일까? 먼저 전자가 보이는 자연현상을 파동방정식의 해로써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그렇다면 파동방정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파동방정식의 기원은 악기에서와 같이 진동하는 줄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줄을 질점들이 연속적으로 있는 계로 취급하고 이 계에 대해 뉴턴의 역학체계를 적용한 것이 파동방정식이다.[2] 수학적으로 파동방정식은[3] 계의 물리적 크기와 무관하게 잘 정의된 2차 편미분 방정식이기 때문에, 미시적인 계에 수학을 적용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볼 때 거시적인 관점에서 질점들의 연속으로 가정했던 것이 미시적인 세계에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이 전제된 파동방정식을 가정이 전제될 수 없는 미시적인 물리 계에 적용하는 것은 불편하다. 미시세계의 현상을 파동방정식이라는 수학적 방법으로 기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매질이 없는 공간에서 전자와 같이 국소화된 물질의 흐름을 우리가 거시적으로 경험하는 파동으로 물리적인 대응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친숙하여 부지불식간에 일반화시키는 오류, 우리 상식적 경험세계의 관념을 그대로 상식 너머에 있는 미시세계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암묵적 일반화에서 기인하는 오류이다.

파동이 어색하다면, 입자는 편한가? 미시세계의 전자가 거시세계의 당구공과 같은 입자라고 생각해보자. 크기를 갖는 물질이 공간적으로 특정한 방향을 선호할 것 같지 않기에 구와 같은 형체를 갖는다고, 기본물질이므로 내재적으로 균일할 것이며 외부와 뚜렷한 경계를 지닌 당구공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이나 TV화면이 실상은 불연속적인 점들의 집합이지만 거시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며, 자연에 나타나는 물체의 경계선들도 크기가 있는 미시적 분자들의 불연속적인 경계를 연속적이고 예리하게 외부와 구별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물질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도 더 이상의 작은 미시적 물질의 도움 없이 그렇게 뚜렷하고 연속적인 경계를 이룰 수 있을까? 물론, 이것도 역시 수학적으로 기하학적인 구조와 대상으로 취급하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지만, 과연 그렇게 물리적인 실체의 3차원적 형상과 2차원적 경계에 대한 이해를 내던져도 될까?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 미시적 물질을 파동 혹은 입자라는 거시적 개념으로 상상하는 것은 우리 경험적 관념을 지나치게 확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시세계로 우리의 관찰영역이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시세계와 광속에 준하는 세계, 태초의 부근으로 관찰 가능한 영역이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케케묵은 관념을 확장하려는 노력은 약한 것처럼 보인다. 밖을 잘 보는 것에 비하여 우리 자체를 잘 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의 발달에 대해서 게으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게으르기 십상이지만, 혜안을 가진 이들의 덕을 보곤 한다.

미시세계의 존재를 기술할 때, 입자로 볼 것이냐 혹은 파동으로 볼 것이냐의 곤란함 혹은 곤란함에서 어긋나 기이함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미시적 실체들은 장(場 Field)로 기술되어야 한다는 현대물리학의 표준모형 관점으로 거부할 수 있다. 앞서 고전적 장론에서 이야기했던 장과 같은 개념이지만,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인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이 자연스럽게 만나면 실체는 장으로 나타난다. 장은 빛이 맥스웰 방정식에 나타나듯이 수학적으로 고전적 파동방정식을 만족시킬 수도 있고, 패러데이가 보여주었듯이 물리적으로 공간에 퍼진 실체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 위에 세워진 양자화된 장은 더 이상 기괴한 것이 아니라 물리와 수학이 어울린 하나의 관점으로 이중성을 넘어 실체의 속성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실제 우리가 만나는 책과 강연 혹은 인터넷의 많은 자료들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설명을 하는 예로써, 이중성을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에서 이러한 상태에 대해서 분명하게 지적하는 글을 필자는 보지 못했다, 그러기에 조심스러우면서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또한 미시세계의 물질 혹은 물질의 궁극적 실체가 무엇이냐는 것 자체는 과학을 넘어 철학이나 우리 관념 일반에서도 중요한 이슈로 생각되기에 가만히 있기 힘들었음을 밝힌다.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양자이론에 다가서기 어려운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얽힘(entanglement)에 있으며 ‘입자-파동 이중성(duality)’에 있지는 않다.

빛이나 전자와 같은 입자가 마치 파동처럼 두 슬릿을 모두 통과하며 나타나는 간섭현상 (b)를 표현하기 위하여, 양자역학관련 책에서 자주 나오는 양자 스키선수의 이미지 (a). 그러나 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미시적 물질은 공간의 한 점이 아니라 공간에 퍼져있는 것이다. 슬릿이 두 개면 두 개를 다 거쳐야 하고, 하나만 있으면 하나만 거칠 뿐이다. 슬릿이 두 개인 경우 간섭은 장의 관점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또한 장이 국소적으로 분포하면 입자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체는 입자나 파동의 선택이 아니라, 장이라는 하나의 모습으로 충분하다.

어떤 이들은 어차피 우리 경험세계 너머의 자연현상들을 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고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수학적으로 형식화하면 얼마든지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정확하게 값을 계산해낼 수 있으니 그러한 견해도 충분히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일까? 지금도 양자역학에 대해서 적지 않게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고. 그리고 현대물리학으로 갈수록 점점 더 수학적으로 형식화되고 사용되는 수학이 난해해져 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방향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물리적 실체와 수학적 실체에 대해서 거리를 둘수록 자연에 대한 이해는 우리 너머의 것으로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이론과 실험이 양립해야 하는 것처럼, 수학적 기술은 물리적 직관과 부합되도록 노력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쌍방향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갖는 물리적 직관이 실상은 어떠한 암묵적 가정과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관념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고민할 가치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물리적 직관은 보다 발달된 기준에서 진동하며 더 높은 세계를 건드릴 수 있을 것이다.

[1] http://bitly.kr/rS6Ih 및 열소이론 http://bitly.kr/9d2NF, http://bitly.kr/hMwZQ 참고

[2] http://bitly.kr/mA4i 참고

[3] 부록 C(파동역학) 참고. 파동방정식은  로 표현되는 2차 편미분 방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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