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세상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어떻게 지금처럼 되었을까? 복잡하지만 조화롭게 보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어떤 것일까?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물질들의 근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렇게나 다채로운 물체들을 구성할 수 있을까? 생명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현대문명에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마력과 같은 궁금함을 일으킨다. 과학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움트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갖추면서 성장하여, 이제 인간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꽤 많이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은 우주에서 자신들이 사는 세상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지상의 세계 너머에 발자국을 남겼으며 언제 세상이 나타났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과학은 이렇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그동안 대단한 성취들을 이루어왔다. 현대의 과학은 원자보다 작은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한한 우주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들을 가지게 되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문명을 이끌어가고 있는 증거들은 우리 일상생활에도 넘친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법, 사회제도, 예술과 문학, 경제, 도덕 등 여러 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지구를 밝힐 정도로 전기문명이 확대되고 디지털 문화가 급속도로 보편화된 것을 보면, 그 속도가 과학의 변화속도 정도로 빠르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변화가 곧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변화를 계량하고 비교한다는 것에 대한 관점과 기준이 다를 수 있으며 어느 분야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분야와 영역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혼자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과학의 개별적인 지식 외에 과학적 경험을 함께하면서, 과학을 음미하는 만남이 되고자 한다. 다섯 날에 걸쳐서 과학이 성장해 온 모습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문명을 경작하는 과학
세상은 정지한 사진이 아니며 늘 변화하고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다. 세상의 변화는 어떠한 원리, 질서를 따르는 것일까? 자연의 변화에 아무런 질서가 없다면, 현재의 몸 형태조차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밤과 낮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지도 않을 것이며, 세상은 온통 혼란스럽고 혼돈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자연과 세상은 어떤 질서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조화롭게 보인다.
과학은 자연을 들여다보고 세상이 어떻게 동작되고 있는지, 인간에게 세상에 대한 사용법을 들려준다. 인간은 자연을 아는 만큼 삶을 변화시켜왔다. 자연현상을 겪고 단순하게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 결과를 예측하고 이용하게 되면서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과 달라졌고 현대문명에 이르렀다.
현대 물리학은 만물의 근원이 되는 입자들의 목록을 찾아냈고, 가장 근원적인 힘들이 어떻게 자연을 작동시키는지 꽤 이해하게 되었다. 왜 기본입자가 그런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근원적인 힘이 왜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는지, 천지창조 순간에 없던 빛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어 우주를 밝히게 되었는지를 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인인 우리가 이러한 모습으로 있게 한 과학을 만나기 위해, 먼저 인간이 자연을 경작하고 이해하고자 한 경로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알 수 없던 자연을 인간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과학적 태도와 활동으로 인하여 우리의 조상과 다른 문명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자연과 인간을 잇는 초월자
30만 년 전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오랫동안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먹이를 얻었다. 자연은 인간이 종속되어 살아남기 위해 따라야 할 세계였다. 약 1만 년 전에 지구는 빙하기가 끝나며 점점 더 따듯해지고 생명의 활동이 왕성해졌다. 채집이 아니라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렵이 아니라 목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다른 동물과 달라졌다. 자연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에서 자연을 활용하려는 능동적인 태도로 바뀐 것이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규칙적인 변화로부터 달력을 만들어내며 일상생활의 기준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재배하는 식물과 기르는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연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고,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들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설명함으로써 자연과 안정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을까?
가뭄,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나 전염병 등 자연의 힘은 막강했으며, 인간은 너무나 미약했으나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을 것이다. 땅(지상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자연현상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황홀할 정도로 찬란한 별들과 세상을 비추는 태양이 있는 규칙적인 하늘(천상계)을 보며, 광대한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 너머의 존재를 상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초월자를 잘 섬김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인간과 초월자의 관계로 바뀌었으며, 초월자를 숭배하는 종교가 인간사회의 주춧돌이 되었다. 세상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었고, 신의 뜻에 잘 따르는 것이 인간사회의 생존과 번영을 의미했을 것이다.
농업과 목축은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것에서 벗어나 정착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단위면적당 수용할 수 있는 인구를 몇 십 배 늘리면서 몇 백 명 수준의 주거지가 몇 천 명 이상이 살아가는 도시로 발달할 수 있게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주된 무대는 자연에서 사회로 전환되었고, 삶의 가치와 소중한 것들은 점점 더 사회 속에서 이루어졌다. 사람들 사이의 거래와 소통은 더욱 중요해졌고, 자연스럽게 문자가 출현하여 주관적인 기억과 직접소통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사회적 소통만이 아니라 문자로 자연현상을 기록할 수 있었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기록과 지식들이 쌓이고 공유되었다. 같은 정보를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이제 집단지성이 형성되고 발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간은 자연의 규칙들을 깨달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씨앗이 어느 시기에 세상에 싹트게 된다. 초월자를 거치지 않고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난 것이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2,600년 전에 따뜻한 햇볕이 풍부한 지중해 연안의 밀레토스에서 자연의 본질을 인간의 이성으로 탐구하려는 최초의 철학 학파가 생겨났다. 바로 밀레토스 학파로 불리는 최초의 자연철학자들이다. 알기 힘든 자연의 변화와 원리를 초월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인간의 영역에서 알고자 하는 태도는 인류를 발달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자연을 알고자 하는 관점은 마주치고 만져지는 물체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물질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진지하게 쫓아가게 되었다.
탈레스(Thales 대략 B.C. 625~547)는 전해져오는 지식과 관측을 통하여 기원전 585년 5월 28일의 일식을 예견했고, 자기현상과 전기현상을 탐구했으며 존재의 근원을 규명하려고 했다. 물은 생명체에게 가장 풍부한 물질이면서 많은 물체들에서 느낄 수 있다. 물체는 물기가 있는 정도에 따라서 젖을 수도 있고 건조할 수도 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다(이 문장이 들어가야 다음 문장으로 연결됨). 그런데 습한 물이 건조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 탈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며 ‘습함’이라는 규정적인 성질을 가진 물이 건조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파란색 뺌), (앞 문장의 몇 곳은 생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건조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 없어서 물을 부정한 것이라기보다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물질을 이루기 위해서, 물질의 근원은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라 구체적일 수 없는 무한자로 생각한 것임 –> 적절히 이 내용을 아래와 연결시켜서 수정해주시면 어떨까요?) 만물의 근원이 되는 존재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어야 하므로 규정할 수 없는 무한자(apeiron)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의 친구인 아낙시메네스(B.C. 585~525)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에 대한 입장을 이해했으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물질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느 곳에서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좀 더 실체적인 공기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공기가 얼마나 ‘희박’ 하느냐에 따라서 불이 될 수도 있고, 얼마나 ‘농후’ 하느냐에 따라서 물과 같은 물질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양적인 차이가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관점은 현대의 물질관에서도 어색하지 않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의 개수에 따라서 원소가 달라지니까 말이다. 또한 이전 세대보다 더 구체적으로 물질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한 것에서 왕성한 사고의 열정이 엿보인다.
각자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는 점이 신선하다. 고대 그리스 현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면, 크세노파네스(B.C. 570~475)는 “모든 것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며, 흙을 만물의 근원처럼 여겼다. 헤라클레이토스(B.C. 535~475)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중시하면서 불을 근원 물질로 보았다. 만물은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라는 주장은 후대에 영향을 끼쳤고 현대의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 4 개 물질이 모두 만물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4원소설을 최초로 주장한 이는 엠페도클레스(B.C. 494~434)다. 네 개의 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를 중요시했으며, 사랑으로 결합하고 미움으로 분리된다는 주장으로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실험을 위해 화산의 분화구에 올랐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엠페도클레스는 직접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자 했다. 플라톤(B.C. 428 ~ 348)은 4원소는 이상적인 기하학적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불은 정사면체, 흙은 정육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물은 정이십면체로 되어 있다고 했다.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이니, 인간이 뭐라 말할 수 없다고 하는 이전의 수동적인 태도와는 확실히 다르다. 인간의 영역 안에서 주장의 근거를 갖추려고 하면서 주장이 더 나은 주장을 이끌며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레우키포스(기원전 440년 무렵)와 제자 데모크리토스(대략 B.C. 460~370)는 만물의 근원을 다르게 생각했다. 물체는 더 작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은 조각들은 더 작은 것들로 나누어진다. 그렇게 계속 나누다 보면 언젠가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기본물질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들은 만물을 이루는 기본물질을 더 이상 나눠질 수 없는 것이란 의미의 ‘아토모스(atomos, a=not, tomos=나누다)’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분자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들은 세계는 아토모스와 텅 빈 공간(진공)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보다 현대적인 관점이지만, 이들의 주장은 2천여 년 후 보일(1627~1691)과 돌턴(1766~1844)이 다시 꺼낼 때까지 4원소설에 덮여 있게 된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정치학, 윤리학,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수사학, 정치, 경제, 물리학,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심리학 등 당대 대부분의 학문에 대해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으며 서양의 사상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520여 종의 동물을 관찰하고 50종 이상의 동물 종을 해부하기도 했는데, 자연의 운동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는 얼핏 깔끔하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어색한 부분들이 있다. 지상의 물체는 4원소의 배합비율에 따라 우주의 중심으로 떨어지거나 멀어지려고 하며, 천상의 물체는 우주의 중심과 거리가 변하지 않는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운동 원인이 물체에 직접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공기와 같은 매질이 필요하며, 천상은 에테르(aether, 대기의 신 아이테르 이름에서 따왔다)로 차 있다고 주장했다. 물속에서 운동이 느려지는 것처럼 매질이 희박할수록 물체의 속력은 빨라지고, 진공에서는 무한대의 속력을 낼 것이기에 진공이 존재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관점으로 진공을 부정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물, 공기, 흙, 불’의 동일한 4가지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4원소설을 주장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엄은 후대에 내려갈수록 하나의 경전처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4원소(classical elements)설을 믿었으며, 물질들을 변형시켜서 값비싼 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연금술(alchemy)에 매달리게 했다.
연금술은 인간의 물질적 욕망과 불로장생을 추구하려는 생물적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오랫동안 연구되었다. 과학혁명을 완성한 뉴턴(1642~1726)조차 연금술에 심취하여 많은 실험을 했다. 그러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물질의 속성과 변화는 원자의 바깥 영역에 있는 전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원자의 변화는 원자의 깊은 곳에 있는 원자핵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연금술과 같은 화학적 실험으로는 원자핵을 바꿀 수 없다.
관찰하고 추론하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질병을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신에게 질병을 거두어달라고 기도했지만, 아테네는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망할 정도로 심한 전염병이 그치지 않았다. 히포크라테스(B.C. 460~370)는 대장장이가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집에 불을 놓아 공기를 건조하게 하며 식수를 끓여 먹도록 하고 시체를 불에 태우는 방법으로 방역에 성공하여 많은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과 같이 명언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주술사나 미신, 종교에 의탁하지 않고, 의술을 인간의 영역에 들인 훌륭한 과학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의사들의 임상관찰과 임상실험을 중시하며, 객관적 관찰과 합리적 추론을 통하여 치료하며,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우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잘 알려져 있다.
갈레노스(129~210)는 히포크라테스 이후 최고의 의학자로 꼽히며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많은 동물을 실제로 해부하여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에 걸친 방대한 의학체계를 만들었으며, 4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여 1300년 이상 서양의학을 지배하게 된다. 종교나 관습과 같은 상상적 믿음이 아니라 실제로 자연을 관찰하고 관찰을 바탕으로 정당한 이론을 세우고자 하는 노력은 인간의 삶과 인간의 영역이 발달시켰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지구의 여러 생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이루는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 인간이 사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세상에 대한 특별한 세계관을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지구가 둥그렇지만 굉장히 크기 때문에 곡률이 아주 작아서 평평하게 느낄 수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오히려 경험과 상식에 더 친근하기도 하다. 지구가 평평하다면 어디선가 끝나야 할 것이다. 별들이 있는 천상의 세계가 지상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으니까. 뱃사람들은 세상의 끝과 만나 배가 끝없이 떨어질까 두려워했고, 이야기꾼들은 땅 끝 너머의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지역과 문화, 종교에 따라서 제각각 상상적 믿음에 익숙한 채로 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와서 “키프로스에서는 보이지 않는 별이 (남쪽인) 이집트에서는 보였다”고 했으며,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드리우는 월식을 보면서 지구가 둥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더 넓은 지역에서 보이는 것을 비교하거나 멀리 떨어진 달을 통해서 유추하지 않으면, 혹은 바닷가 사람들처럼 먼 곳에서부터 다가오는 배가 돛부터 차례로 보이는 현상을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구체적인 근거들을 갖고 지구가 둥글다고 추론한 첫 호모 사피엔스는 아리스토텔레스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마젤란이 1519년에 출항하여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제로 보이면서 세상의 끝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2,200년 전에 살았던 에라토스테네스(B.C. 276~194) 역시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100여 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이해했고, 기하학적으로도 큰 물체의 곡률이 작다는 것도 당연히 알았을 것 같다. 그는 소수를 찾아가는 방법(에라토스테네스의 체)을 만들 정도로 훌륭한 수학자였다. 그는 에라토스테네스는 2,200년 전에 매우 간단한 기하학으로 지구의 크기를 비슷하게 측정한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다. 지구는 둥글고, 태양이 지구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태양빛은 평행하다는 가정을 세우고, 두 지점 사이의 거리, 그리고 같은 시각에 두 지점에서 막대의 그림자 길이 등을 바탕으로 한 간단한 기하학을 이용했다. 측량이 지금보다 정확하지 않았음에도, 현대의 과학이 측정한 지구의 크기(반지름은 대략 6,400㎞이고 적도 둘레는 약 4만㎞ 정도)와 몇 %밖에 차이나지 않을 정도였다. 측량이나 실험으로 자연에서 얻은 값과 수용할 수 있는 소박한 가정, 그리고 논리적으로 검증된 수학이 결합하여 위대한 성취를 낸 것이다. 이렇게 측정과 가설, 그리고 수학으로 이론을 만들고 검증하며 발전시키는 방법은 전형적인 과학의 방법으로 현대 과학자들과 똑같다. 스마트폰으로 지구 어디서나 친구를 만들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여러분은 훨씬 빠르고 쉽게 지구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2,200년 전에 간단한 수학과 물리적 가정으로 지구의 크기를 측정했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재산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정복 이후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졌으며, 헬레니즘 시대에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과학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5세기에 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은 초월자가 지배하는 중세 천년의 암흑시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랍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을 보존하고 소화하며 독립적인 성취도 냈다.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정신유산과 아랍의 성취는 십자군전쟁(Crusades 1095~1291)을 거치면서 유럽에 전파되었고, 인간 중심의 정신을 되살리는 르네상스가 일어나면서 중세에서 깨어나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