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a 뉴턴을 떠받친 거인들

고대로부터 운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는 흙과 물과 같이 무거운 물체는 우주의 중심인 지구 중심으로 떨어지려는 속성을 갖고 있으며, 불과 공기와 같이 가벼운 물체는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어느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면, 물체가 무거울수록 지상계인 지구 중심으로 떨어지려는 속성이 크기 때문에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낙하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천상에는 자연스러운 운동인 원운동을 하고 있으나 지상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은 운동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운동을 자연스러움과 자연스럽지 않음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달까지의 세상인 지상계와 그 너머의 천상계로 세상을 구분하였고, 속성인 본질과 드러남인 현상을 분리하여 생각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운동이 가능한 것은 물체에 운동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며, 운동 원인이 물체에 직접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공기와 같은 매질이 필요하며 천상은 대기의 신 아이테르 이름에서 따온 에테르(aether 아이테르와 철자가 같다)로 차있다고 주장했다.

물속에서 운동이 느려지는 것처럼 매질이 희박할수록 물체의 속력은 빨라지고 진공에서는 무한대의 속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진공이 존재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구태여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현대인의 상식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비록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태도는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현대인도 아무런 과학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면, 왜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고 하늘의 별들은 떨어지지 않고 하루에 한 번씩 자기 앞에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대다수는 의문을 품지 않거나 인간 너머의 불가지한 존재인 신의 뜻으로 돌리지 않을까? 플라톤의 제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방면에서 가장 오랫동안(2천여 년이나) 서양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현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운동관념은 14세기에 뷔리당이, “수평이나 위로 던진 물체가 손을 떠난 후에도 왜 바로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가? 공기는 물체가 지나갈 때 갈라져야 하므로, 오히려 운동에 방해가 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손이 멈췄는데, 공기는 왜 계속 움직여야 하나? 뒤가 뾰족한 창이, 뒤가 넓어서 공기가 더 잘 밀 수 있는 창보다 더 잘 날아가지 않은가?”와 같은 의문을 품으며, 12세기 중엽부터 있던 임페투스(impetus) 이론을 발달시켰다. 뷔리당은 임페투스를 물체의 질량에 빠르기를 곱한 것으로 생각했다. 임페투스는 오늘날의 운동량과 수식적으로는 비슷한 것이지만, 운동의 양이 아니라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주장했다.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는 운동을 수평성분과 수직성분으로 분해하며(물체에 한 가지 운동밖에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관점을 반박한 것이다) 던진 물체가 포물선 운동을 하는 것을 설명하고, 속도의 변화가 없는 관성과 속도가 변하는 가속에 대해 이해하고 이것을 실험으로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가속도를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한 것은 아니다. 가속도는 갈릴레오가 죽은 해에 태어난 뉴턴이 미분을 이용하여 명쾌하게 정의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는 앞선 고대 그리스 현자들이 운동에 대한 사유를 중시하고 실제 실험을 하지 않은 것과 달리, 운동에 대한 수학적 기술만 중시한 것이 아니라 엄밀한 실험들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려고 했다. 갈릴레오는 실험 물리학의 아버지 혹은 근대과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까닭이다. 또한 갈릴레오는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에 대해, “질량에 상관 없이 낙하하는 물체의 낙하 속도는 낙하 시간에 비례하여 증가하고( v ∝ t), 낙하하는 물체의 낙하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h ∝ t2)” 생각을 검증하는 실험을 하면서도, 실험 데이터들이 부정확한 측정과, 줄일 수 없는 마찰들, 그리고 다른 요인들 때문에 이론적, 수학적 결과들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동시대의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자연법칙이라고 부른 자신의 주장에서 관성의 개념을 갈릴레오보다 더 명확하게 했고, 운동량의 개념을 법칙에 사용했다. 데카르트는 자연법칙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운동의 구분(자연스러운 운동과 부자연스러운 운동)을 없앤 사상도 뉴턴에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데카르트의 자연법칙을 살펴보자.

 

i) “모든 물체는 다른 것이 그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으려고 한다.”  

ii) “운동하는 물체는 직선으로 그 운동을 계속하려 한다.

iii) “운동하는 물체가 자신보다 강한 것에 부딪히면 그 운동을 잃지 않고, 약한 것에 부딪혀서 그것을 움직이게 하면 그것에 준 만큼의 운동을 잃는다.

 

i)과 ii)는 관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며, iii)은 운동량 보존법칙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기계적 철학을 지녔으며, 외부의 작용은 물체의 직접 충돌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충돌에 의한 운동의 변화를 순간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운동의 원인, 작용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체 간의 직접적 접촉, 충돌 없이 운동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원격작용은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

이제 뉴턴(Isaac Newton 1642~1726)은 이들 거인들 위에서 천상과 지상이 하나로 합쳐진 새 세상을 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힘을 전달하는 매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갈릴레오는 과학에서 실험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실험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려고 했다. 데카르트는 관성을 명확히 했고, 운동량 보존의 개념을 자신의 자연법칙에 포함시켰다.

 

뉴턴은 1687년 출간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통상적으로 짧게 ‘프린키피아’라 부른다)에서 마치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역학이론을 전개하였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먼저 이론에 사용될 용어인 점, 선, 면, 각도 등을 정의한 후에, 공리와 공준을 전제하여 기하학 정리들을 증명하였다. 뉴턴도 자신의 역학이론에 사용할 용어인 질량과 운동량, 관성과 힘을 정의하고, 익히 잘 알려진 3개의 운동법칙을 공리처럼 가정한 후에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 수 있었다. 특히,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만유인력인 경우에, 자신의 운동법칙에 의거하여 케플러의 3가지 법칙들을 도출할 수 있었다.

1687년에 출간된 뉴턴(1643 ~ 1727)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는 줄여서 ‘프린키피아'(Principia)라고도 불리며 라틴어로 쓰여져 있다. 영어로는 1728년에 출간되었다.

현대에 있어서, 자연에 대한 설명은 적지 않은 지식과 소화하기 힘든 수학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인이 개인적 주장을 펼치기 어렵다. 오히려 잘못 왜곡된 주장을 하면서 사이비 과학 혹은 올바르지 못한 자연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폐해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반인과 과학전문가 사이에 소통을 통하여 일반인은 과학자들에게 인간이 소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에서 전문적 설명방식을 변화시켜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고, 그러한 태도는 과학자들에게 피곤한 숙제가 아니라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측면이 더 크다. 비범한 과학자들은 이미 퇴색해버린 과거의 자연관과 비전문가들의 직관적 질문을 숙고하면서, 전문적인 영역에서 얻은 이해와 지식, 자연관을 생기 있고 활달한 개념과 언어로 발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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