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등속도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 따라 속도가 변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임의의 시간에서의 운동상태를 구할 수 있을까?
현재의 위치와 속도가 다음 순간의 위치를 결정하지만, 다음 순간의 속도는 현재의 속도로부터 결정될 수 있을까? 틀어놓은 수도꼭지를 얼마나 빠르게 열거나 혹은 천천히 잠그느냐에 따라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양은 달라지고, 수조에 채워지는 물의 양이 달라진다. 얼마나 빠르게 수도꼭지를 잠그거나 여는지를 알 수 있다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양이 시간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알 수 있고, 수조에 채워지는 물의 양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속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어느 시간에서의 속도를 알 수 있고 그 다음 시간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운동을 결정하는 운동상태는 속도와 위치로 구성되며, 위치는 속도로 결정되고 속도는 속도의 시간변화로 결정된다. 즉, ‘시간에 따른 속도의 변화’를 알 수 있다면 다음 순간의 속도를 알게 되고, 현재 속도를 알게 된다면 다음 순간의 위치를 알게 된다. 결국 운동상태를 결정하기 위하여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시간에 대한 속도의 변화’이다. 이것을 가속도(acceleration)라고 부르자. 가속도에 따라서 속도가 변하고, 속도에 따라서 위치가 변한다. 운동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속도와 위치이므로, 가속도가 운동상태(속도, 위치)를 결정한다. 그러면, 가속도는 또한 시간에 대한 가속도의 변화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속도의 변화가 운동상태를 결정한다고 말하고, 이것이 계속 반복되어 무한 루프에 빠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운동을 결정하는 운동상태, 속도와 위치다. 속도에 직접 관계하는 것은 가속도이지 가속도의 변화가 아니다. 가속도의 변화는 가속도에 이미 반영되어 속도를 완전히 결정하면서 가속도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도록 한다. 가속도는 운동을 결정하고, 운동의 변화를 표현하는 출발이 되는 것이다. 수도꼭지를 더 열거나 닫는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물이 채워지는 정도가 변하는 것처럼, 운동의 변화도 저절로 일어는 것은 아니다. 운동을 변화시키는 작용이 있어야 운동에 변화가 일어난다.
물체의 운동이 변하는 것은, 바깥에서 물체에 어떤 작용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물질 자체의 성질 때문에 스스로 운동이 변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다. 만약에 물체의 성질로 인하여 운동이 변한다고 가정한다면[1], 물체는 늘 속도가 변해야 한다. 정지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일정한 속도의 물체의 속도가 변한다는 것은 서로 모순된다. 물체의 운동을 변화시키는 성질이 시간에 상관없이 일정하다면, 물체는 결국 무한대의 속도가 되야 할 것이다. 운동에 변화를 주는 작용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계는 물질에 내재된 속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운동과 외부의 작용에 의한 부자연스러운 운동의 두 가지로 운동을 구분하였다. 부자연스러운 운동은 무엇인가가 물체에 직접 작용하여 임의로 일어날 수 있으며, 자연스러운 운동은 물질의 내재된 속성에 따라 우주의 중심인 아래로 낙하하거나 우주의 중심에서 멀어진(상승한)다고 하였다. 또한 천상계는 우주의 중심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원운동만 있으며, 이것은 천상계가 지상계와 다른 제 5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지상계나 천상계나 자연스러운 운동은 모두 운동의 원인이 물질 자체의 내재된 속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물체의 운동상태를 변화시키는 외부의 작용을 힘(Force)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경험과 어울리도록 힘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서, 또한 어느 크기로 힘이 작용하느냐에 따라서 운동의 변화가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힘은 운동을 변화시키는 작용이기 때문에, 작용이 달라지면 변화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도 크기와 방향을 갖는 물리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크기와 방향을 갖는 물리량을, 질량과 같이 방향은 없고 크기만 갖는 물리량과 구별하여 벡터(vector)라고 이름 붙이자. 벡터라는 물리량과 명확하게 구별하기 위하여 크기만 갖는 물리량을 스칼라(scalar)라고 부르자. 크기를 나타내는 스칼라는 실수로 표현할 수 있으므로, 덧셈과 곱셈, 지수화, 미적분 등의 여러 연산을 할 수 있다. 새로운 물리량인 벡터는 어떻게 연산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벡터에게 연산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계산을 할 수 없고 역학법칙을 구성할 수 없다. 벡터에게도 연산을 허락해야 한다.
벡터들 간의 연산 그리고 벡터와 스칼라의 연산을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벡터와 스칼라는 서로 다른 것이므로 덧셈은 정의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벡터와 스칼라의 곱셈을 생각해본다. 벡터의 방향을 변화시키지 않고, 크기만 스칼라의 크기를 곱한 값만큼 변화시키는 것으로 벡터에 스칼라를 곱하는 연산으로 정의하자. 가령 어느 힘에 2를 곱하는 것은, 힘의 방향은 그대로 두고 힘의 크기만 2배로 늘리는 것이다.
이제 수식적인 표현을 하기 위하여 물리량들을 각각 문자로 나타낼 것이며, 벡터와 스칼라를 구별하기 위하여 벡터는 굵은 문자로 표시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들이 이야기를 쉽게 나누기 위하여 서로 약속하자는 것이며,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어느 대상을 문자로 나타내어 식을 다루는 학문을 대수학(代數學 algebra)라고 한다. 구체적인 數로 쓰는 代신, 문자로 표현하면 보다 일반적으로 다룰 수 있다. 역학은 물리량이 개별적인 값을 가질 때만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여러 경우를 포함하는 이론이므로 대수학적인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힘을 F , 가속도를 a로 나타내기로 하자. 각 단어의 앞 알파벳을 기호로 하여 물리량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시 힘과 가속도의 이야기를 해보자.
“힘은 물체의 운동을 변화시키는 작용이고,
가속도는 속도의 변화를 뜻한다.”
[1] 그 물체의 성질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색하다. 시간에 상관없이 갖고 있는 물체의 성질이라고 가정하자. 운동을 변화시키는 물체의 성질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면, 같은 물체를 같은 위치에서 같은 속도로 던져도 물체의 운동은 그때 그때 달라질 것이며 이것은 경험적 상식과 다르다. 물체의 운동이 자체적인 성질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엄밀하게 부정한 것은 아니다. 맞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더 자세히 논리를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물체의 운동이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외부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엄밀하게 정리해보는 것도 좋은 연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