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 과학의 정의’에서 과학이 단지 지식으로써의 가치만이 아니라 과학 자체가 갖는 속성과 과학이 자연에 대해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연과 나누는 대화의 기술을 간략하게 나마 살펴보고 생각할 시간을 갖고자 했다. 조상이 일구어낸 과학적 성취는 단기간에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지만, 과학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습득하느라 정작 과학의 능동적 태도를 잃어버려야 하는 현실이 대부분의 학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교과과정이 개편되지만, 실제로 공교육에서 배워야 할 내용이 얼마나 바뀌는가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이 사회는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싶다.
공교육에서 과학교과를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기 위하여,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의 ‘과학과 교육과정’을 살펴보자. 이 고시는 2015년에 개정되어 2018년 신입생들부터 배우는 교과과정의 ‘목표, 내용 체계와 성취 기준, 교습과 평가의 방향’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러한 고시를 본 적이 없을 것 같아서, 관련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 공통 교육과정(초등학교 3학년 ~ 중학교) –
- 성격
‘과학’은 모든 학생이 과학의 개념을 이해하고 과학적 탐구 능력과 태도를 함양하여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교과이다.
‘과학’에서는 일상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상황을 통해 과학 지식과 탐구 방법을 즐겁게 학습하고 과학적 소양을 함양하여 과학과 사회의 올바른 상호 관계를 인식하며 바람직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하략)
내가 지금 학생이 아니라서 다행스럽다. 학생이라면, 읽으면서 부담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교사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그러한 교육효과를 낼 수 있을지 부담이 더 컸을 것이고, 교과서를 집필하거나 참고서를 쓰는 입장에서도 교육부가 원하는 눈높이를 맞출 자신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 “교육부의 고시야, 원론적이고 형식적인 것이려니” 할 수도 있고, 실제로 형식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과학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좋은 방안이 있을지 모르니 목표도 보자.
– 공통 교육과정(초등학교 3학년 ~ 중학교) –
- 목표
자연 현상과 사물에 대하여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과학의 핵심 개념에 대한 이해와 탐구 능력의 함양을 통하여,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소양을 기른다.
가.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갖고,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기른다.
나. 자연 현상 및 일상생활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을 기른다.
다. 자연 현상을 탐구하여 과학의 핵심 개념을 이해한다.
라. 과학과 기술 및 사회의 상호 관계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기른다.
마. 과학 학습의 즐거움과 과학의 유용성을 인식하여 평생 학습 능력을 기른다.
정말 좋은 내용이다. 잘 쓴 것 같다. 무엇을 빼거나 더하기 힘들 정도로 좋은 내용이라는 것을, 교육부 고시는 스스로 보여준다. 초중등 과학교육의 ‘2. 목표’ 내용은, 고등학교 과정인 통합과학과 과학탐구실험의 목표와 완전히 똑같다. 학생들이 자라고 과목의 성격과 내용이 바뀌더라도, 목표는 한치도 바뀌지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좋은 목표라서 교육대상이 누가 됐든 간에, 학습해야 할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 없이 강조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너무 큰 목표이기 때문에 성취되지 않았을 것을 예상하고 다시 강조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목적이 아니라 목표는 대상에 적합한 지표로써 더 구체적이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든다.
내친 김에 다른 과학교과의 목표도 살펴 보았다. 물리 I과 물리 II의 목표가 동일하며 초중등 과학교육의 목표에서 단어 몇 번 바꾼 정도인 것을 보면, 종교 교리와 같이 신성한 목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 같다. 너무나 좋은 목표이기 때문에, 순순히 받아들여야지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과학사 교과와 지구과학에서 목표 내용이 약간 달라지지만 비슷하다. 화학, 생명과학, 생활과학, 융합과학의 과학목표도 단순히 몇 개의 단어나 어구를 교체한 것 정도로 동일하다.
‘2. 목표’에서도 ‘1. 성격’에 나왔던 민주시민이라는 용어가 또 나온다. 어느 교과목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과학을 잘 하면 민주시민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과학을 못하면 민주시민의 소양이 없게 되는 것일까? 목표 5개 중에서 4개의 목표는 ‘~을 기른다’ 로 끝난다. 기른다는 표현이 거슬린다. 불편하다. ~을 기른다… 라니…
가볍게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을 대하는 교육의 태도와 현실을 대하면 웃을 수 없고 어떻게 할 수 없는 벽을 느낀다.
‘1. 과학의 성격’ 첫 문장인 “‘과학’은 모든 학생이 과학의 개념을 이해하고 과학적 탐구 능력과 태도를 함양하여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교과이다.”와도 배치될 정도로 교과에 있는 지식내용이 너무 많아서 교육목표(과학적 소양)에 근접할 수가 없다.
모든 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과 과학교육이 쉽지도 않다. 어쩌면 교육자나 교과서 저자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배우는 통합과학 교과서를 보다가, 잘못 이해될 수 있는 표현과 제대로 이해하고 썼을 것 같지 않은 내용도 있어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통합과학책들도 모두 구매해서 보았다. 탐구적 사고와 의문을 갖고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채우고 있는 지식들. 그리고 그 지식들의 나열. 평가를 위해, 무엇을 변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변별력을 위해 넘치게 채워진 지식들 목록의 교과서들. 아마도 교육부 고시에서 요구하는 내용들은 최소한 모두 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잘못된 방향이다.
학습해야 할 내용이 많으면, 절대로 능동적인 태도로 학습할 수 없고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식이 과학적 태도를 훼손하고 과학에 대한 불편함을 양산할 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과학교육과 관련된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과학 공교육인가?
다들 문제에 대하여 지적하면서도,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음도, 얽혀있는 여러 이해를 푸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다양한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과학 및 과학교육,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야 하고 제대로 학생들이 과학에 다가설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움직임을 내야 할 일이다. 필자 스스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과학교과에 나온 과학적 지식, 성취는 당대의 뛰어난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관찰하고 좌절을 겪으며 가다듬고 후에 다른 과학자들에 의하여 보완된 것이다. 교과서의 많은 내용들이 그렇다. 그 하나하나의 것들을 제대로 살피게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여러 지식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따져보고 음미할 여유가 학생들에게 주어질 수 없다. 현재까지의 공교육에서는 수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익숙해서 안다고 혹은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현재의 이해 밑으로 내려가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여유, 회의를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기쁨,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여러 생각들이 합일해 가는 경험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혹은 수업하기 어렵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그만둘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현실적이지도 않은 목표를 걸고, 실제로는 목표에 반하는 학습을 요구하는 행태는 추방되어야 한다. 과학 공교육 본래의 목적에 적합한 결단을 더는 후대에게 미루어서는 안될 것 같다. 필자조차도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과학에 몸을 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더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과학 공교육이 학생이나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공감할 지는 모르겠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과학 공교육은 이렇게도 발달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변신만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